술 담배를 끊었었다. 뭐 거창하게 동심(童心)을 불러오고, 내 몸속 깊이 새겨 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몸이 못 이겨내서였다. 하지만 이 역시 아주 잠시 잠깐이었다. 기어코 어떤 일을 핑곗거리 삼아 술을 한잔하게 되면서 담배까지 찾게 됐다. 다시 한번 도로 제자리다.
그렇다면 앞서 슬쩍 말한 동심이란 무엇일까. 흔히 우리는 동심이라는 말을 하면서 뭔가 좀 몽글몽글하고 따스하고 재미있고 기분 좋은 그런 느낌들을 생각해내는 것 같다. 동심을 아이 동(童), 마음 심(心)으로 간단히 해석해버리면 그야말로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는데, 여기서 치명적(?) 오역이 있을 수 있다.
중국 명나라의 사상가이자 비평가인 이지(李贄)라는 사람은 동심설(童心說)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진실한 마음이다. 만약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진실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거짓을 끊어버린 순진함으로 사람이 태어나 맨 처음 갖게 되는 본심이다. 이 마음을 잃어버리면 진심이 사라지게 되고 진심이 사라지면 참다운 인간성도 잃게 된다'고.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어떤 인사말 앞에 '진심'이라는 말을 부지불식간에 잘 붙이는 것 같다. 그냥 '축하합니다' 해도 될 말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고 한다든지 '환영합니다' 해도 될 말에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고 하는 것들 말이다. 이 정도는 해줘야 진심이 전달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나의 축하와 환영은 타인의 그것보다 좀 더 '찐'이라고 호소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진심을 담자는데 시비 걸 이유는 없다. 하지만 지금 이곳이 동심의 세계라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동심의 세계라면 굳이 '진심'을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동심 자체가 거짓을 끊어낸 순진한 마음이니까 진심으로 축하하지 않을 일이 없고 진심으로 환영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 말의 남발은 진심으로 축하나 환영을 하지 못하는 못난 마음을 숨기기 위한 것은 아닐까 하는 게 나의 좁디좁은 소견이다. 어떻게 보면 그냥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뭔가 좀 허전하고 무성의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아니라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라고 하면 의미가 좀 많이 달라진다. 어린아이같이 굴지 말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을 우겨댄다든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어깃장을 놓고 심술을 부리는 등의 행동을 보고 이르는 말이 아니겠는가. 동심의 세계라면 어떨까. 동심은 그야말로 거울이 아니던가. 어린아이의 마음은 갖되, 어린아이 같은 마음은 갖지 말자.
혼탁한 세상, '동심'을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으로 하면 어떨까? 거리낌 없고 속이려 들지 않으며 어우러지고 어떤 순간에도 놀이를 발명해 우리를 세상에 집중하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어떤 목적성에서 벗어나 구속받지 않고 무심한 상태. 앞서겠다는 마음 없고 앞선다는 게 잘난 것이라는 그런 관념조차 없는 세계. 무심히 감사하고 무심히 환영해도 되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진심에 정말이라는 부사까지 갖다 붙여야 먹히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나이만 먹어가는 미성숙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어른들은 어떻게 보면 아이들보다 잘 못 하는 게 훨씬 더 많다. 그렇지, 이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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