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아버지. 단, 하루만이라도 다녀가시면 한이 없겠습니다.
얼마나 먼 곳이기에 얼마나 험한 곳이기에 가신 지 27년이 되어도 단 한 번도 뵐 수 없고 그렇게도 다정하시던 목소리 한 번도 들을 수 없단 말입니까?
아버지 우리 아버지. 그렇게도 인자하시며 그렇게도 너그럽던 나의 아버지. 돌아가신 할머님이 그리워 산소에 앉으셔서 혼자 눈물을 흘리시던 그 모습을 지울 수 없답니다.
그렇게도 효자이시던 나의 아버지. 사랑하는 남편이 일본인들의 손에 돌아가시어 평생 수절하며 살아오신 할머니를 모시던 아버지는 남다른 효자이셨습니다. 그렇게도 좋아하시던 약주를 거나하게 취하시도록 드셔도 할머니 앞에서는 자세하나 흐트러짐이 없으시던 나의 아버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할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홀어머니 품에 자라면서도 모든 이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사시다가 1993년 60대 초반에 하늘나라로 가셨죠. 아버지가 한없이 그리워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 산소에 가서 목 놓아 불러 봅니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잠시라도 다녀가시면 너무도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아버지의 친구인 나의 담임 선생님인 윤황수 선생님께 아버지께서 약주 대접을 하시면서 부탁하시던 그 말씀이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제 머리에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답니다.
"여보게 윤 선생 우리 아이가 숫기가 없으니 자주 칭찬도 하고 발표를 시켜주시게" "이놈이 종갓집 맏아들 아닌가? 부탁하네". 그 후로 선생님은 늘 저에게 발표를 시키고 아주 잘했다고 칭찬을 하실 때마다 저는 더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답니다.
지금도 국민학교 때 받은 통지표와 상장을 아버지께서 보관하시다 물려주셔서 가보로 보관하고 있답니다. 1975년 1월 현역군인 시절 아버지는 경북 상주 화북 용화에서 종일 버스를 타고 그 머나먼 대구 2군사령부까지 면회 오셨지요.
지금도 그때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잊혀지지 않아요. "재훈아 공부도 중요하지만
첫째. 좋은 친구를 사귀도록 하되 의리를 중요시하도록 해라.
둘째. 말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되 가급적 적게 천천히 하거라.
셋째. 남이 어려울 때일수록 가까이 가서 친구가 되어 주거라.
넷째. 공부와 칭찬은 평소에 하도록 하며
다섯째. 가까이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하거라.
이 말씀을 듣고 아버지와 나는 대구 달성공원에 가서 이곳저곳 구경하며 하루를 즐겁게 보냈습니다. 가시면서 주머니에 넣어 주시던 아버지의 비상금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옵니다. 아버지 단, 한 번이라도 다녀가시면 아버지 좋아하시던 약주와 맛깔스러운 안주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로 아버지를 즐겁게 해드리고 싶네요.
아버지 단, 한 번도 효도해 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훌쩍 떠나버린 나의 아버지! 오늘따라 아버지가 한없이 그립습니다. 지금도 고향 땅 상주에서는 아버지 존함을 대면 정말 법 없이도 사실 수 있는 훌륭한 어른이었다고 노인들께서 말씀하신답니다. 고향 상주는 그대로인데 왜 아버지는 그곳에 계시지 않나요. 그립습니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 사시면서도 교육자요 독립운동가의 아들임을 언제나 긍지와 자랑으로 살아오신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딸 손주들이 각자 분야에서 나라와 사회에 본이 되는 삶을 살고 있답니다.
아버지께서 그리도 귀여워하던 손녀딸은 미국의 명문 피츠버그 대학에서 존경받는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었답니다.
아버지 한 번만 단, 한 번만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다녀가세요. 살아 계실 때 단, 한 번도 효도하지 못한 불효자 아들이 목 놓아 불러 봅니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김인원)를 그리워하는 아들(김재훈 한국기독문화연구소 이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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