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치속담] 정치인과 돈, 애증의 관계…정치후원금의 명암

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정치후원금 후원문화 확산을 위한 홍보 포스터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정치후원금 후원문화 확산을 위한 홍보 포스터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1. 지난 12월 초 경북에 지역구를 둔 한 국회의원은 사석에서 "연말이 다가오는데 후원금 모금이 지지부진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도액 3억원의 70%도 못 채운 상태였다. 그러면서 "연말에 후원이 집중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상황이 어렵다"고 했다. 현재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엔 후원금 계좌가 적혀있다.

#2. 지난 10월 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김남국 의원은 (후원금이) 다 찼다고 자랑하는데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대통령님 뵙기도 부끄럽고... 한 푼 줍쇼"라고 썼다. 다음 날 그는 "어제 후원계좌를 올린 이후 현재까지 584분께서 2천742만원을 보내주셨다"며 감사를 표했다.

#3. 주호영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지난 5월 초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새 원내대표에 당선되자 의원실에 후원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하지만 당시 주 원내대표 후원금 계좌는 4·15총선 나흘 전에 이미 한도액을 넘긴 상황이었다. 의원실에선 "감사하지만 방법이 없다"며 전화를 끊어야 했다.

정치활동에 돈이 필요한 것은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막상 '정치자금'이라는 말에 색안경을 끼는 국민이 다수이다. 이러한 오해를 불식코자 '민주주의 비용'이라고 불리는 정치후원금에 정치인들이 울고 웃는 이유를 들여다 봤다.

◆'고소득자' 국회의원, 왜 후원금 필요하나

국회의원은 후원금(선거 없는 해 최대 1억5천만원, 선거 있는 해 3억원) 외 세비로 연봉 1억5천여만원과 의원실 지원비 9천여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정치 활동에 소요되는 경비가 만만치 않다. 매 연말 의정보고서를 제작·발송하는 데만 5천여만원이 필요하다. 문자 메시지 발송, 지역구 사무실 운영, 간담회·토론회 개최 등의 비용을 모두 합치면 세비를 제외한 수입과 지출이 얼추 비슷해진다.

특히 생계형 국회의원은 정치후원금이 더욱 절실하다.

지역구 의원 보좌관 A는 "국회에 점차 생계형 국회의원이 많아지고 있는데 세비로는 딱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더군다나 배우자는 세간의 시선 탓에 직업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생계형 국회의원은 이른바 홑벌이로 자식 키우고 부모님 모신다"고 했다.

정치후원금은 생계형 의원의 정치 활동에 있어 '젖줄'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모든 국회의원이 정치후원금에 목을 매는 것은 아니다. '부자' 국회의원은 자기 돈만으로 정치후원금 계좌를 한도까지 채울 수 있다. 성향에 따라 후원금 모금 요청을 아예 하지 않는 의원도 있다.

지역구 의원 보좌관 B는 "저희 의원님은 절대 후원금 모금을 먼저 부탁하지 않는다. 들어오는 대로 씀씀이를 맞춰가면 된다는 생각"이라며 "다만 자발적 후원에는 반드시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가 지난 5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코로나19 재난 극복을 위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세비 기부 캠페인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호영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가 지난 5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코로나19 재난 극복을 위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세비 기부 캠페인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후원금 '빈부격차'가 나는 이유

정치후원금에도 빈부격차가 있다. 대개 선수가 높을수록 후원금이 많이 들어온다. 상임위원장, 간사 등 상임위 직무부터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등 당직까지 모두 중진 의원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21대 국회 대구경북(TK) 의원 가운데선 5선 주호영 원내대표와 3선 윤재옥 의원(대구 달서을)이 지난 총선 과정에서 한도액 3억원을 채웠다. 국회 예결위 야당 간사인 재선 추경호 의원(대구 달성)도 지난달에 한도를 채웠다.

이에 반해 일부 TK 초선 의원의 사정은 좋지 않다. 총선이 있었던 2020년에는 선거 전후 1억5천만원씩 두 차례 나눠 총 3억원 한도 후원금 모금이 이뤄졌다.

경북의 한 초선 의원 보좌관 C는 "선거 전 후원금은 어떻게든 충당이 됐는데, 선거 후 후원금 모금이 쉽지 않다"며 "300만원 이상 고액 후원은 찾아볼 수 없고, 10만원의 소액도 간간히 들어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민의힘이 '지리멸렬' 야당으로 전락한 것은 TK 초선 의원들이 모금에 애를 먹는 주원인이다.

'국회의원 정치후원금 기부 결정요인 분석 : 18대 국회의원 후원회 기부금에 대한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고액 후원일수록 집권여당 의원에게 더 많이 모이는 경향을 보인다. 21대 국회에서 국민의힘은 의석 수 절대 열세로 여당의 입법 독주를 막지 못했고, 이것이 후원금 모금 저조로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12월 14일 오후 국회에서 본회의가 산회된 뒤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12월 14일 오후 국회에서 본회의가 산회된 뒤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차떼기 사건 후 탄생한 개정 정치자금법

집권 및 여야(與野) 여부와 선수 등 변수에 따라 정치후원금은 요동치지만, 과거와 비교해 모금 과정이 훨씬 투명해진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재 정치후원금 제도는 2002년 대선 불법자금 비리사건을 계기로 개정된 정치자금법을 근간으로 한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대기업으로부터 트럭채로 정치자금을 전달받은 이른바 '차떼기' 사건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2004년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의원 개정된 정치자금법은 '소액다수기부주의'를 중요 원칙으로 채택했다. 단체나 법인의 고액기부를 원천 금지해 다수 유권자의 소액 기부로 정치자금을 조달하자는 취지였다. 중앙당 및 시·도당의 후원회도 폐지, 정치인 개인 중심의 정치자금 공급체계를 꾀했다. 또 개인이라도 연간 500만원을 초과해 특정 정치인에게 후원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취지에 반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후원금 기부 현황과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정치후원금 총액은 정체되는 반면 이 가운데 고액 기부 비중이 소폭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전한 정치후원문화 형성으로 다수의 소액 기부 증가를 기대했지만, 여전히 '낼 사람만 낸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정치 불신'을 주요인으로 지목한다.

◆유권자로부터 신뢰 회복이 먼저

올 연말 후원금 부족에 시달리는 TK 의원들 역시 "나와 우리 당(국민의힘)이 앞으로 더 잘 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A 보좌관은 "후원금이 의정 성적표라고 볼 순 없지만 국회의원에 대한 미래 기대치를 반영하는 것은 분명하다"며 "초선 의원들은 올해 처음으로 후원금을 모금하고 다른 의원들과도 비교하면서 느낀 바가 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에 더 나아진 모습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권자들의 전향적인 자세도 요구된다.

선관위 관계자는 "성숙한 정치 문화를 만드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정치후원금"이라며 "일반 국민에게는 정치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고 정당이나 정치인에게는 깨끗한 정치자금을 원활히 조달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현재 정치후원금은 10만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를, 10만원 초과 금액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인터넷, 모바일, 카드 포인트 등 후원 방법도 간편하다.

전문가들은 정차지금 공개를 더욱 강화하는 제도적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현재 선거비용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제한적 공개를 확대해 모든 정치자금 수입·지출 내역의 일상적 인터넷 공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후원 대상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의원들의 선거공약과, 의정활동 등의 정보를 연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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