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미국 원주민계 장관

김지석 디지털 논설위원
김지석 디지털 논설위원

1890년 12월 29일,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운디드니에서 기관총 등으로 무장한 미군 500여 명이 인디언 수족을 무장해제하다 충돌이 일어나자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200명 이상을 대량 학살했다.

'운디드니 대학살'은 미군과 인디언 사이의 마지막 전투로 이후에 인디언들은 더는 저항할 수 없었다. 대학살 발생 2주 전 평생 동안 저항을 이끌며 용맹을 떨쳤던 수족의 추장 타탕카 이오타케(시팅불·Sitting Bull)가 총격전 도중 살해당해 구심점마저 사라진 상황이었다. 시간을 훨씬 거슬러 올라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인디언 학살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미국은 오랫동안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탄압해왔다.

'인디언'이라는 명칭부터 콜럼버스가 인도를 발견했다고 착각해 잘못 붙인 것으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 명칭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 프로야구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도 이 때문에 최근 이름 교체 작업에 나섰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2010년에야 미국 초기 정부가 원주민을 탄압하고 강제 이주시키고 빈곤과 질병, 법의 보호로부터 방치한 데 대해서 바로잡겠다며 사과했다. 너무 지체된 사과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최근 원주민계 여성인 뉴멕시코주 지역구의 뎁 할랜드(60) 연방 하원의원을 내무장관 후보로 지명했다. 미국의 첫 원주민계 장관이 되는 그는 원주민 보호구역 등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는 19일(현지시간) 1850년대 내무장관인 도널드 그라인드의 '원주민 말살' 발언을 거론한 뒤 "나는 그 끔찍한 생각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산 증거"라고 말했다.

미국의 원주민은 현재 300만~500만 명 정도로 대부분 빈곤 문제를 안고 있다. 할랜드 장관 후보조차 과거 푸드 스탬프(저소득 영양지원)에 의존해야 했던 '싱글 맘' 출신이다.

바이든 당선인의 원주민계 장관 발탁은 백인, 여성, 흑인, 성소수자, 라틴계, 아시아계 등으로 내각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과정의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거치면서 정치적, 인종적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국가적 통합이 요구되는 데 따른 선택이다. 그러한 의도가 제대로 열매를 맺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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