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홍준의 시와 함께] 시간의 신경 / 김대호 作

먼지가 앉은 창틀이 있다

손으로 쓸어보지 않으면

그냥 창틀로만 보이는 창틀이다

창틀의 친화력이 먼지들을 불러온 걸까

저 낱낱의 먼지가

먼지라는 육체를 가진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목구비가 없는 먼지

내장이 없는 먼지

그러나 어느새 창틀의 신경이 된 먼지

저 창틀의 먼지는 이제 흩날리지 않는다

저 먼지의 연대는 폐가의 역사가 되었다

사랑스러운 무엇이 되었다

사랑이란 이런 절차를 거치기도 하는구나

유리창에 금이 가는 것도 먼지의 압력 때문이구나

나는 그가 올 때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먼지가 창틀로 오는 여정을 지켜본다

내 두 눈에서 나온 먼지가 꽃잎처럼 흩날리다가

창틀에 내려앉는다

시각은 금방 물질로 변했다

시간이 하는 것을 흉내 내면서

시각은 창틀에 사랑스럽게 포개졌다

창틀엔 왜 늘 먼지가 내려앉을까? '이목구비가 없는 먼지/ 내장이 없는 먼지'가……. '손으로 쓸어보지 않으면' 닦아도 표가 안 나고 안 닦아도 표가 안 나는 먼지가 지나간 날에 대한 기억이고 추억이고 아쉬움일까.

아직도 나는 왜 '그가 올 때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멍하니 창을 내다보고만 있는 것일까? 오래오래 창밖을 바라본 자만이 이 먼지들의 육체를 발견하는 것일까? 장롱 밑에 앉은 먼지도 아니고 선반 위에 쌓인 먼지도 아니고 시인이 주목한 것은 창틀에 내려앉은 먼지!

세상엔 늘 벽이 존재하지만 사랑하는 연인들은 그곳에 뚝딱 창 하나를 만든다. 세월이 흘러 이별이 찾아와도 마찬가지다. 살아 있는 한 그 둘 사이엔 여전히 창문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창문을 아쉬움이라 부르고 그리움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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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시인
유홍준 시인

시인 유홍준: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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