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워지는 때다. 퇴근 후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행복이 방 안 가득히 채워진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지속될 것 같은 행복도 단박에 사라질 수 있다. 가난이라는 바늘구멍 하나에 방 안 가득했던 행복이 빠져나가고 불행이 그 작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법이다.
얼마 전 여섯 살 난 딸아이의 교육을 위해 서울 목동으로 이사 가고 싶었던 한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 버렸다. 새 아파트 구매 문제로 다투던 부부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올 초에는 어느 한의사 부부가 같은 선택을 했다. 이들이 원했던 건 으리으리한 저택이 아니라 따뜻한 보금자리였을 것이다.
이 정부 들어 유독 뛰는 집값에 고통받는 가정이 늘고 있다. 집값이 내릴 것이라는 정부 말을 믿고 아파트 구매를 미루었다가 집값과 전세금이 모두 폭등하면서 집도 못 사고 전세 살기마저 어려워진 '어쩌다 벼락 거지', 여기다 전세금까지 오르는 바람에 생긴 '렌트푸어', 이번 생에서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들다는 '이생집망'까지…. 모두가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최대 피해자다. 열심히 일하고 허리띠를 졸라매서 저축한 이들이다. 잘못이라면 지나치게 정부를 믿었던 것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가장 강조한 것이 바로 빈부 격차 해소다. 그러나 오히려 빈부 격차·자산가치 격차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24차례 대책을 내놨지만, 서울 강남에서 시작된 불길이 수도권·지방으로 갔다가 다시 격차 메우기에 들어가는 '불의 순환고리'가 무한 반복되고 있다. 정부 규제가 오히려 집값을 폭등시키고 있다는 원망만 늘고 있다. 정부에 '왜 대책이 없느냐?'라고 따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어서일까. 그동안 국토부 장관 뒤에서 침묵을 지키던 대통령까지 직접 나섰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동탄 공공임대주택 단지를 찾아 둘러봤다. 이 모습을 본 무주택자들은 또 한 번 가슴이 무너졌다. 4천여만원을 들여 실내 장식을 하고 4억여원을 들여 이를 광고했다. 의도와 달리, 열심히 일해 내 집 갖고 싶고 처자식과 알콩달콩 사는 게 꿈인 이들에게 집 사지 말고 공공임대에 살라는 말로 들렸을 수도 있다. 지난 17일과 18일에는 대구는 물론 전국의 절반을 묶는 조정대상지역·고분양가 관리지역 추가 등 기습적인 부동산 정책을 내놨다. 무주택 서민들의 집 사기가 사실상 봉쇄당한 셈이다.
하다 하다 22일에는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가구 1주택 보유'를 법으로 규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집값 폭등을 부동산 투기 때문으로 보고 이를 막고자 1가구 1주택을 정책 목표로 삼겠다는 취지다. 처벌 조항 등 강제 규정은 없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섬뜩하다. 다주택자에 대한 기존 규제를 뛰어넘는 고강도 규제 정책을 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될 수 있어서다. 자녀 교육과 직장 등의 문제로 주택을 일시적으로 두 채 보유하는 것도 불법이 될 수 있다. 여론은 발칵 뒤집혔다. '사유재산을 부정하려는 것이냐' '사회주의·공산주의다'라는 비판과 우려가 쏟아졌다. 사유재산권과 교육 및 직장 이동의 자유까지 침해한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가 크다는 법조계 의견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에 집값 폭등까지 견뎌야 할 것이 많아 유난히 더 추운 겨울이다. '시계를 3년 반 전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믿으면)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하는 상회(傷懷)마저 든다. 그럼에도, 희망을 품어본다. '새해에는 달라질 수 있겠지.'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