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니(프렌치불독·4살·8.3kg)가 피부 가려움 때문에 내원했다. 머리와 몸 여기저기 긁어 생긴 찰과상들이 발견됐다. 검사 결과 외부 기생충과 세균 등의 감염성 피부질환은 아니었다. 알러지 피부염에 준하는 약물 처방을 하고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며칠 뒤에도 화니의 증상은 개선되지 않았으며 산책을 다녀오면 그 날 밤 가려움이 더 심해진다고 문의하셨다.
보호자와의 상담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가족들은 귤과 오렌지를 자주 드시는 편이었고 덩달아 화니도 즐겨 먹는다고 하셨다. 보호자에게 화니가 귤이나 오렌지 껍질을 먹은 적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예상대로 식탐이 강한 화니는 식구들이 남긴 오렌지와 자몽을 껍질째 삼키기도 한다고 하셨다.
제주 감귤, 한라봉, 천혜향, 오렌지, 자몽을 비롯해 레몬과 라임 계열의 과일 껍질에는 개와 고양이에게 해가되는 성분이 함유돼 있다. 레몬 특유의 은은하고 상큼한 향을 발산시키는 레몬 오일에 함유된 리모넨(limonene), 리날룰(linalool), 솔라렌(Psoralen)이 그 원인 물질이다.
리모넨(limonene)과 리날룰(linalool)은 살충 효과를 가진다. 개가 섭취하면 구토, 설사, 침울해지며 과량을 섭취하면 간독성이 유발될 수도 있다. 특히 리모넨(limonene)은 고양이에게 치명적이다. 사람들이 즐기는 마사지오일(Lemon oil, Citrus oil)은 그 함량이 농축돼 있기 때문에 개와 고양이에게 더더욱 치명적이다.

솔라렌(Psoralen)을 개가 섭취하면 햇볕에 노출되어 광과민성 피부염을 유발한다. 화니의 알러지와 가려움이 심해진 이유이다.
그렇다면 귤, 오렌지, 자몽의 과육 부분만 개에게 주는 것은 괜찮을까? 그렇지 않다.
천연 비타민C가 개에게 도움 되리라 추정 할 수 있다. 사람에게 비타민C는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필수 영양소이지만 개와 고양이는 체내에서 비타민C를 합성해내기 때문에 비타민C 결핍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비타민C를 과량 섭취하면 소화장애가 발생하거나 옥살산염 계열의 방광결석이 생길 수도 있다.
과일은 천연 과당을 함유하여 건강에 도움 될 거라 추정할 수 있다. 반려견의 대부분이 과영양 상태임을 감안하면 당의 섭취는 당 의존성을 높이고 비만을 촉발시킬 염려가 더 크다.
독성이 치명적이지는 않더라도 먹어서 가지는 이득보다는 부작용이 더 염려스럽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감귤, 오렌지, 자몽 등은 애당초 개에게 먹이지 말 것을 당부드리고 싶다.
자몽 주스, 레모네이드, 시판되는 음료수는 더 염려스럽다. 당과 구연산 함량이 높으며 첨가된 인공감미료도 건강에 도움 될 리가 없다. 탈취와 향기의 목적으로 레몬 오일이 함유된 제품들도 있다. 개와 고양이의 피부에 닿으면 결과적으로 유독 성분들을 핥아먹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개가 귤, 오렌지, 자몽을 껍질째 먹어 버렸다면 1시간 이내는 가정에서 구토를 유도할 수 있다.
과산화수소수(약국판매용 3% 수용액)를 kg당 1cc (체중 5kg당 1티스푼)를 급여시킨다. 주사기 또는 어린이용 투약병을 이용하면 좀 더 쉽게 먹일 수 있다. 급여 후 배를 천천히 흔들어 주면 위에서 거품 포말이 형성돼 구토가 용이해진다. 구토가 원활하지 않다면 10분 뒤 동일 양을 한 번 더 급여할 수 있다. 두 번 이상은 급여하지 않는다.
개가 구토를 하지 않거나 시간이 경과된 경우라면 동물병원을 내원해야 한다. 해독제는 없지만 위장관 흡착제를 급여시켜 독소의 체외 배출을 유도하고, 혈관 수액 치료와 항구토 처방이 이뤄지기도 한다. 햇볕에 의한 광과민 피부염은 증상이 사라질 때까지 개가 햇볕에 노출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며, 가려움과 국소 피부병변에 대한 약물 처방을 따라주셔야 한다. 대략 1~2주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감귤, 레몬, 자몽 껍질은 개가 탐하지 못하도록 바로 버려주셔야 하며, 감귤 나무를 직접 키우시는 가정에서는 개가 과실을 접촉하지 않도록 통제시킬 필요가 있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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