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 이른 아침에] 매트릭스 리로디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진중권

지난 12월 23일 정경심 교수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판결의 내용은 지난 2월 조국 흑서팀의 권경애 변호사와 김경율 회계사의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형량이 우리 예상보다 세게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전혀 예상 못 한 일은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1년 전 같은 날에 이미 SNS에 이런 글을 올린 바 있다.

"정경심의 지지자들이 실은 정 교수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문제를 '사법'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으로 가져가면, 피고는 지지자들 의식해서라도 끝까지 무죄를 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피고가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끝까지 혐의 사실을 부인하면, 이른바 '개전의 정'이 없다고 하여 양형에는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하지만 나의 충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 교수 부부와 변호인단은 법정 안에서 '변론'을 하는 대신에 법정 밖의 지지자들을 겨냥해 '정치'를 했다. 재판부에서는 이들이 "모든 공소사실을 부인하면서 설득력 없고 비합리적인 주장을 계속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데 그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판결문에는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피고인은(…) 입시 비리 혐의에 관하여 진술한 사람들이 정치적 목적 또는 개인적 이익을 위하여 허위 진술을 하였다는 등의 주장을 함으로써,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법정에서 증언한 사람을 비난하는 계기를 제공하여 진실을 이야기한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였습니다."

1심 판결로 그 매트릭스의 허구성이 폭로되었지만, 그들은 아직도 그 허망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일제히 사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지지자들은 청와대 게시판으로 몰려가 재판부 탄핵을 청원하고 있다. 그 수가 무려 35만 명이란다. 이런 행동이 정 교수 부부에게 외려 불리한 결과만 가져올 거라는 게 문제다.

대개 피고인들은 1심에서는 사실을 다투다가 패하면 2심에선 양형을 다툰다고 한다. 하지만 재판을 '정치화'하면 이 전략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법정 밖에는 피고인의 결백을 믿어주는 지지자들이 최소한 35만이 있다. 이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잖은가. 문제는 지지자들이 믿어주는 그 거짓말을 판사들은 안 믿어준다는 데 있다.

이번 판결에서 주목할 것은 몇몇 혐의에서 조국 교수를 공범으로 판단한 부분이다. 이에 대해 조국 교수는 "제 '공모' 부분에 대한 석명 역시 모두 기각되었는데 이는 제 재판부에서 다툴 것"이라 밝혔다. 한마디로 '매트릭스 리로디드', 즉 무너진 매트릭스를 재건해 수조 속에서 자는 지지자들의 꿈을 깨뜨리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잡아떼기 전략을 고수하는 것은 당연히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통상 부인이 구속된 이상 같거나 연관된 사안으로 남편까지 구속하는 일은 흔치 않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재판에서 정 교수와 동일한 전략을 구사할 경우 이 일반적 관행에도 예외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래서 그에게 1년 전에 했던 그 충고를 반복하려 한다.

법정에서 제대로 된 변론을 하려면, 일단 자신과 아내가 검찰 개혁을 하려 했기 때문에 기소됐다는 허위 의식부터 버려야 한다. '검찰 개혁'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게 꼭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놈의 '검찰 개혁'은 그의 후임인 추미애 장관이 더 잘했다. 얼마나 잘했는지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그와 그의 아내는 공직자와 그 가족으로서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기소된 것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세뇌된 지지자들에게는 엉성한 거짓말도 통할지 몰라도 그게 판사들에게까지 통할 거라 믿으면 오산이다. 법정은 게임의 논리가 다르다. 그곳은 엄격한 증거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따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자신을 구해줄 거라 믿어서도 안 된다. 법치국가에서는 대통령도 법 위에 설 수 없다. 부당한 것이라면 대통령이 재가한 징계도 집행을 정지당한다. 최선의 방책은 정직이다. 그가 법정에서 어설픈 '정치'를 할 게 아니라,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는 가운데 제대로 된 변론으로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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