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나라 지방의회는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했다. 매번 지방선거 때면 "낮은 곳에서 참 일꾼이 되겠다"며 진땀을 흘리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높으신 분'이 돼 권위만 과시하기 일쑤다. "이럴 거면 차라리 지방의회를 없애라"는 지적이 뼈아프다.
물론 지방의원 개개인의 인성 문제를 빼놓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하지만 비판이 '개인 차원'에 머무르는 순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해진다. 지방의회 신뢰 상실의 구조적인 원인을 찾아 개선해나가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일당 독점에 '견제論' 유명무실
"유권자들은 대구경북에서 여당 일색의 광역의회 출범에 대해 지역행정 감시기능에 깊은 우려를 하고 있다. 민자당은 이번 선거에서 대구 28석 중 26석, 경북은 87석 가운데 66석을 차지, 지방의회의 '여당 독주'를 예상케 하고 있다."
매일신문 1991년 6월 21일 자 15면에 실린 "일당(一黨) 의회…행정 시녀 우려" 기사에 실린 시민들의 걱정은 결국 현실이 됐다.
전문가들은 대구경북 지방의회가 경쟁력과 신뢰를 상실한 가장 큰 이유로 30년간 이어져 온 '일당 독점'을 꼽는다. 지역적 보수 성향이 강해 오랫동안 집행부와 의회가 모두 보수 정치권 일색으로 구성돼왔고, 자연스럽게 견제 기능이 약화했다는 것이다.

실제 매일신문이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1991년 첫 지방선거 이후 대구경북 광역의회 의원 구성 결과를 분석한 결과, 1991년 광역의원선거와 1~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대구는 모두 243석의 의석 중 86.4%에 이르는 210석, 경북은 529석 중 80.1%인 424석을 범보수권 정당(민자당계, 자민련 등)에서 가져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범민주당계 정당이 30년간 배출한 광역의회 의석은 대구에서 8석, 경북에서 23석에 불과했다. 특히 진보정당은 대구에서 아예 의석을 차지한 적이 없었고, 경북에서는 민주노동당과 정의당이 한 차례씩 당선된 게 전부였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경우는 대구가 25석, 경북이 80석 있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대부분이 보수정당 내 공천 갈등 등으로 갈라서 나왔다가 당선 이후 복당하는 식의 '사실상 보수 후보'였다는 게 정치권의 설명이다.
이런 문제를 완화하고 지방의회에 '정치적 다양성'을 가져올 방안으로 선거구제 개혁이 언급된다. 현행 선거법은 기초의원 선거에 한해 중선거구제를 적용하고, 광역의원을 포함한 나머지 선거는 모두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가 적용된다. 1위 후보의 표를 제외하면 모두 사표(死票)가 돼 지역 내 소수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은 "선거구를 더 확대할 경우 독점적 지위를 가진 정당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제1야당은 물론 제2야당까지 의회에 유입돼 다양성을 기반으로 집행부를 견제할 수 있게 된다"며 "물론 이 경우 공천이 더 중요해지는 만큼 각 정당이 지방정치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방정부·지방의회 권한 강화 필요"
일각에서는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제대로 된 권한을 확보하지 못한 '반쪽짜리 지방자치'로 출범한 탓에 이런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한과 기능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해 수준 높은 인력의 유입이 어렵고, 자연스럽게 의원들의 자질이 떨어져 국민 신뢰를 잃었다는 논리다. 특히 중앙정부에 비해 떨어지는 지방정부의 권한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컸다. 요약하자면 "수준 높은 지방의회를 위해서는 강한 권한을 가진 지방정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방자치사무로 입법권, 자치행정권, 예산권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되면 일단 기획재정부에 가서 예산부터 따 와야 하지 않느냐"며 "제도적으로 우리 지방자치는 아직 절름발이다. 실질적인 지방자치는 이뤄지지 못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은 실제 지방의회 의원들 사이에서도 폭넓게 제기된다.
대구의 한 광역의원은 "지역구에 뭐라도 하나 하려면 국비 없이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결국 중앙정부에서 그 국비를 따올 수 있는 국회의원의 힘만 강해진다. 과연 지역을 대표해 국가 단위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의원 명의로 '도로를 냈다, 무슨 시설을 지었다'는 현수막이 걸리는 게 맞는 일인지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지방정부의 권한 강화에 더해 수준 높은 사람들이 지방의회로 유입될 수 있도록 보수 등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세헌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방정부와 의회의 결정 범위가 매우 좁고 보수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우수한 인물이 자기 생업을 버리고 지방의회에 종사할 메리트가 없는 셈"이라며 "이런 이들이 지방정치판에 들어와 발전을 이끌 수 있도록 지방분권과 재정분권 등 권한을 늘려주고, 유인책으로써 보수도 올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결국 지방자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의회가 집행부를 견제하듯, 의회를 견제하는 역할은 시민사회가 맡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 시민사회는 제도적 민주주의의 두 가지 축 가운데 수평적 분립에는 관심이 많지만, 수직적 분할에는 아직 관심이 적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민주주의가 더 심화되고 성숙하면서 자연히 그런 요구들이 돌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의원들은 "주민 밀착·소통 필요"
민심을 가장 가까이서 느끼는 지방의원들은 '주민 밀착'과 '소통'을 신뢰 회복의 과제로 제시한다. 주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의정활동의 주제를 발굴하고, 이를 의원 개개인이 적극적으로 알려가며 신뢰 회복에 노력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장상수 대구시의회 의장은 "시의원들이 의정활동을 책자로 만들어 배포하고 싶어도 높은 비용에 엄두를 못 내고, 자연스럽게 소통이 부족해진다. 그러다 언론에서 일탈과 사건·사고를 크게 다루면 '결국 똑같은 놈들 아니냐'며 손쉽게 지방의회 무용론이 제기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실제 지방의원들은 매일 민원을 받고, 개인사를 뒷전으로 미뤄가면서까지 거의 1인 5역을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를 시민들에게 더 세세한 부분까지 전달하려는 소통 노력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민구 대구시의회 부의장은 "늘 언론에 노출되는 국회의원에 비해 지방의원들은 뭘 하는지 일반 주민들은 모르고, 사건·사고를 제외하곤 관심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며 "끊임없이 의원 개인이 SNS나 문자를 통해 의정활동을 알리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활동사항을 알리면 알릴수록 민원도 더 많이 들어오고 직간접적인 소통이 활발해진다"고 강조했다.
강 부의장은 또 "최근 도시계획 조례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지역구의 종 변경 관련 활동을 비롯해 '주민 이익'과 밀접한 활동을 하면 관심도가 체감될 만큼 높아진다"면서 "주민들은 알고 싶지 않을 권리, 모를 권리도 있다. 결국 의원들이 얼마나 주민들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의정활동 주제를 발굴하느냐가 향후 지방의회의 지속 가능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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