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방의회 30년] - 下 지방자치법 개정, 지방의회의 길은?

32년 만 '진일보' 평가 많지만
'한계 있는 개정' 지적 무시 못해

국회가 지난해 12월 9일 통과시킨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우리나라 지방자치 30년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됐다. '반쪽짜리 지방자치'에 대한 꾸준한 지적에도 중앙권력의 강고한 벽을 넘지 못한 채 30여 년 간 논의에만 머물렀던 숙원이 드디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그 성과와 한계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한 상황.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도 했던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이 좌절된 데 대한 실망감이 크다. 과연 지방자치법 개정안은 우리 지방의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우리 지방자치가 나아가야 할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지난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지방자치법 개정안 등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한병도 소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지방자치법 개정안 등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한병도 소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32년만 진일보…지방 발전 초석"

이번 개정안이 지방의회에 가져올 변화의 핵심으로는 ▷지방의회 의장의 의회사무처 인사권 부여 ▷지방의회 정책지원 전문인력 도입 ▷윤리특별위원 설치 의무화 ▷지방의원 겸직 금지 등이 꼽힌다.

현재 지방의회의 경우 사무처 직원 대부분은 집행부 소속 공무원이다. 인사권도 집행부에서 담당한다. 가령 대구시의회 사무처 직원은 대구시청 소속이며, 보직도 시청이 결정한다. 물론 의회 의견을 수렴하긴 하지만, 결국 '칼자루'를 쥔 건 집행부인 셈이다.

이를 두고 "집행부를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 직원들의 인사권을 집행부에서 쥐고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중앙에서 국회직 공무원을 별도로 선발하듯, 지방의회도 집행부와 차별화된 인사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지방의회 의장이 사무처 직원들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국회처럼 별도 선발까지는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부서 배치와 승진 등에 대한 영향력이 커진 셈이다.

특히 지방의원들은 '정책 지원 전문인력' 도입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개정안이 공포되면 지방의원 2명당 1명씩의 정책 보좌관을 두고 조례안의 법률적 검토나 정무적 판단 등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한 대구시의원은 "지역구 관리, 민원 처리, 집행부와의 소통 등을 하다 보면 '언제 아이디어를 내 조례를 발의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정책보좌관을 두게 되면서 이 문제가 다소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밖에 인구 100만명 이상의 대도시를 특례시로 지정하는 내용도 특기할 만 하다. 대구경북에는 이 조항이 적용되는 곳이 없지만, 향후 더 많은 권한을 가진 특례시가 늘어난다면 자연스럽게 지방의회 전반의 권한도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지역 정치권은 미흡하나마 '한발 진일보'했다는 데 의미를 두는 분위기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자 전국 시·도의회는 일제히 환영한다는 성명을 냈다. '자치분권'이라는 우리 시대의 틀에 맞지 않는, 그럼에도 30년 넘게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던 지방자치법에 '첫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 핵심이다.

장상수 대구시의회 의장은 성명을 통해 "1988년 이후 30년 이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던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면서 지방 발전의 새 전기가 열렸다. 자치단체의 실질적 자율성 확대, 지방의회 권한과 전문성 강화 등 의미가 크다"며 "변화하는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지방자치 발전의 초석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구시의회가 지난해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연 기자회견의 모습. 대구시의회 제공
대구시의회가 지난해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연 기자회견의 모습. 대구시의회 제공

◆"한계 뚜렷한 첫발…개선해 나가야"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도 한계는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32년 만에 첫 개정이라는 의미는 있지만, 실제 지방에서 원했던 수준에는 한참 못 미쳤다는 것이다.

먼저 시범사업으로 이미 진행 중인 '주민자치회'의 존재를 법적으로 못박는 조항이 애초 개정안에 포함됐음에도 국회 논의과정에서 삭제됐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주민자치회는 읍·면·동 주민센터와 행정에 대해 협의하거나 마을계획, 소식지 발간 등 주민들이 직접 지역 행정에 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제도다. 지난 2013년 행정안전부 시범사업으로 시작돼 지난해 6월까지 전국 626개 읍·면·동에서 시행됐다.

그러나 성공적인 시범사업에도 입법 과정에서 주민자치회의 존재를 법적으로 규정하는 데는 실패했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주민들이 직접 자기 동네의 일을 결정하고, 이에 법적 정당성과 권위를 부여하는 주민자치회가 없으면 결국 국가권력을 갖고 재미 보는 사람은 선출직 공무원에 그치게 된다. 실제 풀뿌리인 주민들에게까지 권한을 나눌 수 있는 주민자치회가 빠진 것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지방의회의 인사권 부여와 정책 지원 인력 역시 '지방의회 역할론'을 타개하기에는 역부족 수준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사권은 전보 등 일부 권한만 보장하는 '반쪽짜리'이고, 의원 2명당 1명의 정책 지원 인력은 모자란다는 게 핵심이다.

또 지방의회가 보다 독립적인 입법 행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마저 '중앙정부의 지침'을 받아 처리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장상수 대구시의회 의장은 "말은 인사권 독립이지만 각론으로 들어가 보면 대구시청에서 빌려쓰는 입장인 건 똑같다. 시청과 동등한 독립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개정안을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서는 행정안전부의 지침이 나와 봐야 알 것 같다. 이 자체로도 이미 '독립'과는 거리가 먼 게 사실"이라고 했다.

정책 지원 인력과 관련해서도 정해진 직급과 업무 범위가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 대구시의원은 "적어도 5급 수준으로 책정했어야 능력 있는 이들이 지방의회에 유입되고, 정책 대안도 많이 개발될 수 있는데 6급 수준이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며 "의원들 사이에선 2명당 1명씩 할당돼 업무가 이원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지난 1991년 대구시의회가 30년만에 다시 개원돼 의장이 첫 본회의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매일신문DB
지난 1991년 대구시의회가 30년만에 다시 개원돼 의장이 첫 본회의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매일신문DB

◆지방의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전문가들은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이 법이 향후 다가올 지방분권 시대의 초석이 될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세헌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권한과 재정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게 핵심"이라며 "특히 재정의 경우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현재의 8:2에서 7:3으로 바꾸자는 논의가 진행 중인데, 선진국 수준으로 가려면 6:4까지는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까지 우리 지방의회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선전했다' 정도의 평가는 내릴 수 있다. 앞으로의 30년은 주민과의 스킨십을 더 늘려 지방의회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여야를 넘어 여성과 장애인을 비롯한 계층 간, 세대 간의 다양성을 확보해 질 높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의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존에 세수의 20%만 받을 수 있다고 해서 '2할 자치'라고 부를 정도로 약했던 자치권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는 점을 평가할 수 있지만, 아직 형편없이 미흡하다"며 "다만 주민자치 참여 연령을 낮추거나 필요 인원수를 줄인 점 등은 '참여의 문지방'을 낮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했다.

그는 "어쨌든 그동안 지방자치를 통해 지방이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한다는 문제의식과 정체성이 생겨나는 성과가 있었다. 권력의 추가 수도권으로 더 많이 기울어가는 상황에서 인구 비례가 아닌 지역 대표성을 갖는 상원제도를 비롯, 중앙집권적인 체제 기득권을 분산하는 대의체계가 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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