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담컨대 세월이 흘러 과거사를 떠올릴 때면 2020년은 반드시 소환될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가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잘 버텨왔다. 유전적으로 바이러스에 강해서가 아니다. 위태위태한 상황에도 강한 의지와 높은 국민 의식으로 잘 억제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3차 유행기에 접어들면서 여론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백신 확보가 늦어지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치중한 정부 정책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다. 야당과 언론의 날 선 비판도 가세했다. 이른바 '늑장 백신' 논란이다. 이달 중순부터 미국 캐나다를 비롯해 EU 27개국이 백신 뚜껑을 열기 시작했고 멕시코와 칠레, 코스타리카 등 중남미 국가까지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백신 대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진 것이다. 일각에서 "백신 확보를 게을리한 정부의 K-방역 자충수"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백신은 예방이 목적이다. 백신 접종을 통해 개인의 감염 확률이 크게 낮아지면 집단 전체의 면역이 가능해진다. 질병 확산을 막는 1차 방패인 백신 접종은 부작용 등 안전성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지만 신속하고 대량의 접종이 이뤄질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백신 접종이 늦어지는 데 대한 뒷맛이 꽤 쓰다.
이달 14일부터 백신 투여를 시작한 미국 사례를 보자. '초고속작전'(Operation Wrap Speed)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2주간 약 200만 명이 화이자와 모더나, 바이오엔테크의 백신을 맞았다. 하루 15만 명꼴이다. 미국 연방정부가 각 주에 배포한 백신 물량은 모두 946만5천725회분이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일반 시민의 백신 접종은 내년 한여름이나 초가을이 현실적인 시간표"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백신 대중화의 길이 생각처럼 순탄하지 않다는 뜻이다. 만약 백신 접종자가 빠르게 늘지 않고 지금 추세대로 간다면 미국 인구 약 3억3천만 명이 모두 접종하는 데 꼬박 6년이 걸린다. 게다가 하루 백신 접종자 수보다 확진자 수가 더 많은 게 미국의 현실이다. 이는 백신 접종에 따른 집단면역 효과가 그만큼 더딜 수밖에 없다는 의미인데 미국뿐 아니라 현재 코로나 사태가 심각한 국가들이 마주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제 영국 정부가 "내년 1월 4일부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보급한다"고 밝혔다. 이 백신은 우리 정부가 구매 리스트 상단에 올려둔 것이다. 정부·여당은 27일 당정 협의회에서 "내년 2월부터 백신 접종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는데 지난주 계약한 화이자·얀센 물량을 포함해 모두 4천600만 명분으로, 정부 계산대로라면 내년 2분기로 예정된 각국의 일반인 대상 접종 계획과 비슷한 시기에 접종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을 잘 살펴보면 '늑장 백신'의 팩트가 드러난다. 생명공학자 강충경 씨의 24일 페이스북 글도 눈여겨볼 만하다. "백신과 치료제는 많이 다르다. 주사 한두 번으로 만사가 해결되지 않는다. 백신은 안전성 등 고려할 것이 많아 섣불리 결정할 것은 아니다" "지금은 접종 후 근육통 등 즉시적 현상만 보지만, 장기적으로 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다른 나라 사례를 두 달가량 지켜보며 시간을 번 것은 잘한 일이다. 형편이 된다면 백신 개발 이후 관찰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좋다"는 내용이다.
백신과 치료제가 급한 것은 미국이나 우리나 매한가지다. 그러나 급하다고 앞뒤 가리지 않고 덤비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현재 조건과 환경을 정확히 이해하고 바르게 대처하는 성숙한 사회 분위기, 백신에 버금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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