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코너를 담당하는 기자는 인터뷰에 나서기만 하면 일명 '위로병'이 발동한다. 구구절절한 가슴 아픈 이야기를 지닌 이웃,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이웃,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안절부절 상태다. 1시간 남짓한 인터뷰 시간에 작은 위로라도 주고 싶어 머리를 굴려 보지만, 매번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아쉬움을 가득 안고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그런 기자는 요즘 그들에게 되레 위로를 받고 있다.
다름 아닌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도움을 받은 것 같다'는 인터뷰이들의 말 때문이다. 기자는 1시간 내내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것밖에 없지만 어느 누구도 귀 기울여 주지 않았던 본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 준다는 자체만으로도 그들에겐 큰 위로이자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었다. 이웃을 돕는다는 건 이웃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준다는 의미에 더 가까워 보인 순간이었다.
온갖 나눔 활동이 활발한 연말이다. 거리에는 자선냄비를 알리는 구세군의 종소리가 가득하고 지역사회 기관과 단체들은 홀몸노인, 저소득층을 돕기 위한 김치 나눔, 이불 나눔 등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고액 기부자 수에서 대구가 전국 1위에 올라서는 등 시민들이 나눔 활동에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장기화하는 코로나19는 대구경북의 나눔 저력에 찬물을 끼얹는 중이다. 11월부터 불었던 코로나19 3차 대유행에 기업들의 자금 사정은 악화됐고 시민들은 다시 주머니를 닫았다. 나눔 활동 역시 한껏 움츠러들었다. 거리 자선모금·봉사활동에 나서는 손길이 부쩍 준 것이다.
대구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액은 전년 대비 50% 줄어들었다. 예년 이맘때쯤 예약이 모두 차고도 남았을 연탄 봉사 역시 올해는 줄줄이 취소 행렬에 나섰다. 사랑의연탄나눔운동 대구경북지사에 따르면 내년 1, 2월 연탄 봉사 예약 팀은 단 두 팀뿐이고 기부 연탄도 지난해 11, 12월 9만7천 장에서 올해 5만 장으로 확 줄었다. 덩달아 연탄 수급 가구도 지난해 300가구에서 160가구로 감소했다.
그럼에도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다. 어려운 사회 속 잊혀 가는 이웃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민들이다.
지난달 취재차 만난 사회 곳곳에 포진된 익명의 기부자와 봉사자들은 이웃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묵묵히 작은 나눔 활동이라도 이어갔다. "나의 성금과 봉사활동들이 어려운 가정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메시지를 던져 주기에 그 자체가 희망이 된다"는 어느 봉사자의 말은 인상적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2020년 대구경북민들의 나눔 저력에 다시 한번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혹자는 이미 대다수 시민들의 기부 피로도가 증가했다고 지적한다.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기부 연탄이 줄자 연탄 수급 가구가 준 것처럼 나눔이 주춤하는 사이 소외된 이웃의 이야기와 희망은 사라지고 있다.
대신 나눔의 의미를 바꿔 보면 어떨까. 소외된 이웃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는 것이다. 거액의 성금 전달이나 거창한 봉사활동이 아니더라도 연탄 봉사, 거리의 자선 나눔 활동 등 일상 속 작은 나눔 실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관심의 행동들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살아갈 원동력이 되는 또 다른 '나눔'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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