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코로나 세한 송백

이권효 계명대 특임교수·동양철학박사

이권효 계명대 특임교수·동양철학박사
이권효 계명대 특임교수·동양철학박사

겨울 날씨가 차가울수록 추사(완당) 김정희와 그의 '세한도'가 생각난다. 최근 세한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더 높아졌다. 그림을 오랫동안 간직해온 손창근 선생이 국가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달 31일까지 전시해 추사를 새로운 느낌으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다.

그런데 신문과 TV 등 대중매체에서 세한도를 보도할 때 '발문'(跋文: 그림이나 책을 설명하는 글)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림을 보여줄 때도 세한도 왼쪽의 발문을 빼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세한도를 잘라 절반만 보여주고 훼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한도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발문을 살펴야 한다. 발문을 음미해야 세한도의 깊은 뜻을 느낄 수 있다. 추사에게 글씨와 그림은 별개가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추사는 송백(소나무와 잣나무)을 그린 뒤 발문을 쓸 때 정성을 쏟았을 것이다. 제주도 서귀포 대정읍에 유배된 지 5년째. 세상에서 잊히던 추사에게 제자(우선 이상적)가 청나라에서 구한 귀한 책을 두 차례 보냈다. 세한도는 그 고마움에 대한 답례 작품이라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틀리지 않지만 피상적인 설명이다.

세한도 발문에는 제자에 대한 고마움을 넘어서는 차원이 있다. 세한송백 정신에서 나온 세한도는 그림 작품 이전에 추사 자신의 삶을 지탱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추사체 글씨도 제주 유배 시절에 높은 경지를 이룩했다. 그의 이 같은 태도가 제자의 행동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나타난 것이다.

'세한연후송백'이라는 말은 논어 자한 편에 공자의 말로 기록되어 있고, 추사는 이를 그림의 제목으로 삼았다. '세한도'는 '세한송백도'의 줄임말이라고 할 수 있다. 송백의 한결같은 푸름을 칭송하는 기록은 논어 이전 문헌에도 많이 등장한다. 세한송백은 공자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담은 표현이라는 점에서 송백의 의미가 확장됐다.

발문은 290자가량이다. 귀한 책을 어렵게 구해 보내준 사연을 시작으로 공자께서도 칭찬할 만한 일이라고 고마워한다. 발문에서 깊이 음미할 부분은 끝에 언급되어 있다. 추사는 "공자께서 겨울 송백을 특별히 칭송한 이유는 시들지 않는 꿋꿋한 모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차가운(어려운) 시절에 대한 심정을 드러낸 것이리라."(聖人之特稱,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라고 했다. 세한송백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삶이 매우 어려운 상황일수록 사람의 바른 성품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스며 있다는 말이다.

세한은 해마다 돌아오는 그냥 보통의 겨울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추운(어려운) 특별한 때를 상징한다. 추사는 이를 '세한지시'(歲寒之時)라고 표현했다. 공자에게는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14년 유랑 생활을 함께한 제자들이, 절해고도에 갇혀 하루하루 이겨내던 추사에게는 책에 마음을 담아 보낸 제자가 세한송백이다.

'국보 중의 국보'라는 세한도의 가치는 추사의 이 같은 깊은 마음에서 은은한 향기처럼 피어난다. 제자 이상적이 세한도를 중국에 가져갔을 때 많은 문인들이 앞다퉈 감동한 느낌을 글로 남긴 이유도 삶을 깊이 헤아리는 마음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 품에 안긴 세한도의 더 큰 가치는 국민이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 세한'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서로 위하는 마음을 담아 '코로나 세한송백도'를 가슴에 그리는 분위기에서 그 힘이 돋아나리라.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