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글로벌FOCUS] 실타래처럼 얽힌 예멘 내전, 끝모르는 비극 길어져

지난 30일(현지시간) 예멘 남부 아덴에 있는 공항에서 발생한 폭발 현장으로 시민들이 대피하는 모습을 관련 동영상에서 캡처한 사진. 테러로 추정되는 이번 폭발로 최소 26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다쳤다고 AFP 통신은 보도했다.연합뉴스
지난 30일(현지시간) 예멘 남부 아덴에 있는 공항에서 발생한 폭발 현장으로 시민들이 대피하는 모습을 관련 동영상에서 캡처한 사진. 테러로 추정되는 이번 폭발로 최소 26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다쳤다고 AFP 통신은 보도했다.연합뉴스
김지석 디지털 논설위원
김지석 디지털 논설위원

아라비아 반도 서남단에 있는 예멘은 우리에게 거리상으로나 심리적으로 멀고 낯선 나라이다. 남북한처럼 분단된 나라여서 우리와 공통점을 지녔던 때도 있었으나 통일됐다가 다시 갈라져 지금은 내전에 휩싸여 있다. 지난 2018년에 예멘 출신 난민 500여 명이 제주도에 입국해 우리 정부에 난민 지위 인정을 요청한 것을 두고 찬반 논란이 크게 벌어진 일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별 관계 없을 것 같던 예멘이 한동안 관심을 받기도 했다.

지난 30일(현지시간) 예멘 남부 아덴에 있는 공항에서 박격포 공격으로 추정되는 폭발로 최소 26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다치는 참사가 빚어졌다. 마인 압둘말리크 총리 등 예멘 정부의 새 각료들이 탄 비행기가 이날 아덴 공항에 착륙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보아 이들을 겨냥한 테러로 보이는데 각료들은 안전하다고 소식통이 전했다.

이날의 테러는 큰 피해를 낳았지만, 이는 크고 작은 테러와 공격이 다반사인 이 나라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비극의 하나일 뿐이다. 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숨지는 불행이 끝모르게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식량 부족 문제가 사상 최악 수준으로 심각해져 수많은 어린이가 아사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 28일 유니세프가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계획(WFP)과 공동으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예멘 남부 133개 지역의 5세 이하 어린이 140만 명 중 9만8천 명가량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어 어린이 한 세대가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현재의 예멘 내전은 2015년부터 시작된 2차 내전으로 매우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1990년 5월에 남북 합의로 통일이 되었다가 권력 분배 문제와 각종 차별, 이슬람교 종파 관련 대립 등으로 1994년에 남예멘이 일으킨 1차 내전이 벌어졌다가 북예멘의 승리로 짧게 끝난 역사가 있다. 지금의 내전은 국제사회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는 예멘 정부, 이에 대항하는 후티 반군, 남부의 분리주의자들이 따로 세력을 형성한 남부 과도위원회 사이에 '삼국지'와 같은 구도로 증오의 대결을 벌이고 있다. 한편으로, 알 카에다 등 테러 세력이 가끔씩 준동, 내전을 더욱 어지럽게 몰고가고 있다.

주로 예멘 정부와 후티 반군이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한 남부 과도위원회는 이전에 예멘 정부와 동맹을 맺었다가 반기를 들고 틈틈이 남부 지역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예멘 정부와 남부 분리주의자들은 이달 중순에 연합해 새롭게 권력을 배분한 내각을 구성했다. 30일 예멘 정부의 임시 수도인 아덴의 공항 테러는 이들을 겨냥한 것으로 후티 반군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예멘 정부는 압두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이 이끌고 있으며 내전 초기에 후티 반군에 패퇴해 남예멘의 옛 수도인 아덴으로 이동, 이 곳을 거점으로 하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 격인 사우디 아라비아가 예멘 정부의 동맹국으로 나서고 있으며 후티 반군은 시아파 국가인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어 예멘 내전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리전처럼 치러지고 있기도 하다. 남부 과도위원회는 아랍에미리트의 지원을 받고 있다.

후티 반군은 1994년 북예멘의 옛 수도 사나에서 모하메드 알 후티에 의해 세워졌으며, 예멘 정부가 2004년에 종교 지도자이자 전직 국회의원인 후세인 바드레딘 알 후티를 체포하려고 하자 무장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1월에 대통령궁이 있던 사나를 점령한 후 이 곳을 거점으로 과거 북예멘에 해당하는 지역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는데 이 지역은 시아파가 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이란만이 후티 반군을 예멘의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있으나 이란은 공식적으로 후티 반군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예멘의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내전의 뿌리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다. 20세기 초에 남예멘은 영국, 북예멘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분할 통치를 받고 있다가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승전국이 되자 오스만투르크의 지배에서 벗어난 북예멘이 먼저 독립했다. 북예멘은 독립 후 1962년부터 1970년까지 8년간 영국의 지원을 받는 예멘 왕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는 예멘 아랍 공화국이 내전을 벌여 예멘 아랍 공화국이 승리했다. 예멘 아랍공화국은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아랍 사회주의'를 채택했지만 사실상의 군부독재 국가였다.

남예멘은 영국의 식민지로 남아 있다가 1967년에야 북예멘처럼 소련의 힘을 빌어 독립해 예멘 인민민주공화국이 되었다. 공산주의 체제 국가였지만 이슬람 종교색이 짙은 국가이기도 하였다. 이후 북예멘과 대립해 1972년과 1979년에 두 차례 남북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북예멘과 남예멘은 모두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여서 체제의 차이가 크지 않았고 종파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슬람 국가였다. 1989년에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혁 개방하고 소련까지 무너지자 이듬해에 남·북예멘은 통일 국가가 되었다.

예멘은 1990년 통일 이전에 하나의 국가를 이룬 적이 없었다. 과거의 베트남이나 독일, 현재의 한국 등 다른 분단국가들과 비교해 단일국가로 살아온 역사적 경험이 거의 없었다. 남·북예멘이 서로 총칼을 겨누었고 각자 자국 내에서 내전도 벌어지는 등 갈등과 분쟁의 역사를 거쳐왔다. 그러면서도 하나의 같은 예멘이라는 의식은 있어서 통일을 추구했고 통일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통일 이후의 사회 갈등, 이슬람 종파 간 갈등, 남부지역의 분리 의식 등이 작용해 내전의 질곡에 빠지고 말았다.

예멘 내전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이다. 2018년 연말에 유엔 등이 중재에 나서 예멘 정부와 후티 반군이 휴전에 합의했지만, 수개월 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다시 전투가 시작돼 서로 공격하고 인명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서방 진영에서 미국이 예멘 정부를 돕기 위해 군대를 주둔하고 유럽 국가들이 무기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하기도 하는 등 소극적 수준의 관여에 나서고 있으나 별다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예멘 정부와 같은 편인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때로 갈등을 빚으면서 내전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고, 반대편에서는 이란이 후티 반군을 교묘하게 지원하는 등 주변의 얽힌 국제적 이해관계는 해답 풀기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내전이 길어질수록 난민이 발생하고 여성과 어린이 등 많은 사람들이 공격에 희생되거나 굶주리면서 죽어나가고 있으니 딱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