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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세상 읽기]2021 사필귀정(事必歸正)의 한 해가 되길….

올 한해 불한당에게 송두리째 탈탈 털려버린 기분

대프리카 대구는 올 여름 의료진들이 더위 때문에 더 힘들었다. 매일신문DB
대프리카 대구는 올 여름 의료진들이 더위 때문에 더 힘들었다. 매일신문DB

2020년이 저문다. 세모(歲暮)엔 누구라도 아쉬운 감회가 앞서지만 올해는 뭔가 복잡하다. 찝찝하달까, 억울하달까, 분하달까. 난데없이 들이닥친 불한당에게 눈 번히 뜨고 일년을 송두리째 탈탈 털려버린 기분….

마스크 때문에라도 힘든 한 해였다. '대프리카'의 여름을 마스크를 낀채 땀띠약 발라가며 견뎌냈다. 겨울이 되어 마스크덕을 보기도 하지만 문밖만 나서면 껴야하니 힘들기는 도긴개긴이다.

'코로나 19'가 경기를 꽁꽁 얼려버린 것도 가슴을 무겁게 한다. 최근 동네 상가에서 '전당포'라는 새 간판을 봤다. 참으로 오랜만에 접하는 세 글자다.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진건가.

하기야 우유대리점을 하는 50대의 남동생도 남들 보기엔 사장이지만 투잡족이 됐다. 새벽에는 우유를 배송하고, 밤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야식 배달 아르바이트에 나선다. 코로나 사태로 학교와 유치원의 휴교·휴원 등 우유 급식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야간 아르바이트 하는 식당 업주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낮에는 자신의 식당에서 땀흘리고, 퇴근후에는 위험한 밤길 달리며 남의 식당 음식을 배달하는 사람들. 임대료며 인건비 부담 줄이고, 가족들 입에 풀칠이라도 해주기 위해서이다. 눈물겨운 생계형 투잡, 쓰리잡 가장들이 전국에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올 한해 지역경제에도 한파가 몰아닥쳤다. 대구 한 호텔의 한산한 모습. 매일신문DB
코로나19의 여파로 올 한해 지역경제에도 한파가 몰아닥쳤다. 대구 한 호텔의 한산한 모습. 매일신문DB

1934년부터 1년동안 장개석 국민당 군대에 쫓긴 중국 공산당 홍군의 이른바 '대장정(大長征)'은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11개의 성(省)을 지나고, 18개의 산맥(5개는 만년 설산), 24개의 강, 광대한 초원지대 등을 통과하며 1만2천km(1만5천, 2만5천km설)를 걸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로와 굶주림에 지쳐 잠시 쉬려고 앉았다가 영원히 일어서지 못했다. 또 많은 사람들은 거대 수초지에 빠져 죽거나 3천~5천m 설산에서 얼어죽었다. 대장정 출발때의 인원 중 종착지 연안(延安)까지 무사히 도착한 생존자는 겨우 10%에 불과했다. 지금 우리 국민 중에도 21세기판 고난의 대장정에 떠밀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바라기는 부디 도중에 지쳐 쓰러지지 않기를….

동네 작은 채소가게의 풀빵틀 앞에서 남자 고교생이 미니붕어빵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5개 1천원. 아저씨가 갓 구워낸 풀빵 10개를 종이봉지에 담아 학생에게 건넸다. 그런데 학생 얼굴에 급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파카주머니며 가방을 뒤지는 모습을 본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풀빵봉지를 안겨주었다. "됐다 마, 돈은 다음에 도고." 학생이 떠난뒤 내가 물었다. "돈을 갖고 올까요?" 아저씨는 대수롭잖다는 듯 말했다. "갖다주면 좋고, 안줘도 괜찮심더. 2천원 없어서 못살겠십니꺼"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내로남불 언행이 연일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가운데 한푼이 아쉬울 영세 자영업 아저씨의 넉넉한 정이 내눈엔 더없이 돋보였다.

해마다 2월말이나 3월초면 오랜 친구 넷과 함께 동해안으로 가곤 했다. 게 익는 내음 물씬한 포구에서 가락지 낀 박달대게는 눈으로만 맛볼뿐, 각자 다리살 차오른 수컷 빵게 두 마리에 홍게 한 마리쯤 뜯노라면 절로 얼굴들이 벙싯거려지곤 했다. 연중 딱 한 번인 그 소소한 즐거움을 올해는 코로나 괴물에 빼앗겨 버렸다.

그나저나 백신을 맞기 시작한 다른 나라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작금의 사태가 참 어이없고 황당하다. 갑자기 제3세계의 가난뱅이 백성이 된 것 같다.

그래도 어김없는 새해! 2,3월쯤이면 동해안에서의 작은 호사를 다시 누릴 수 있으려나. 가수 한영애의 노래 '조율'을 자주 흥얼거리게 된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 번 해주세요' 부디 2021년엔 모든 것이 순리대로 조율되어 '사필귀정(事必歸正)'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를….

한겨울에 반가운 꽃손님이 찾아왔다. 재작년 친구에게서 분양받은 게발선인장이 이달들어 처음으로 진홍빛 꽃을 피워내고 있다. 얇디얇은 몸에서 밀어내는 꽃잎이 기적같다. 새해엔 부디 이 나라에, 우리네 삶에 아름다운 기적들이 잇따르기를 소망해 본다.

전경옥 언론인(전 매일신문 논설위원)
전경옥 언론인(전 매일신문 논설위원)

전경옥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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