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도 이미 많다 말하는데 行年四十已云多(행년사십이운다)
오늘 한 살 더 먹으니 이거 정말 큰일났네 加一今朝又若何(가일금조우약하)
예서 또 우물거리다 쉰이 되고 말 것이니 從此逡巡爲半百(종차준순위반백)
안타깝네, 달리는 세월 멈출 수가 없다는 게 可憐無計駐頹波(가련무계주퇴파)
* 원제: 기축년 새 달력에 씀[題己丑新曆]
조선 전기의 시인 이정형(李廷馨·1549∼1607)이 마흔한 살 때, 새해 아침 새로 나온 달력에다 적어둔 시다. 해놓은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막무가내 달려가는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실하게 포착되어 있다. 이제부터는 허송세월하지 않겠다는 결의도 행간에 깔려있을 터다. 물론 오늘날의 나이와 직접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아직 마흔하나에 불과한 시인이 이런 시를 쓰다니 엄살이 좀 심하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다음 글을 보면 엄살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새해 첫 닭이 이미 울었으니, 내 나이 이제 열여덟이 되었다. 열다섯이 되기 전까지는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안타까워할 줄도 몰랐다. 열다섯이 된 뒤에야 비로소 흘러가는 세월을 근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새해 첫날 아침마다 반드시 베개를 어루만지며 스스로 이렇게 한탄하였다.
'내 나이가 올해 몇 살인가? 평소의 내가 하는 언행들을 돌이켜보면 단 한 가지도 내 나이에 걸맞은 것이 없으니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이렇게 반성을 한 지도 이미 몇 년이 흘러갔으나… 지금 스스로 살펴보건대 처음 한탄을 했을 때와 이렇다 할 차이를 찾을 수 없다… 부끄러움이 극도에 달하여 두려워질 지경이니 얼굴이 붉어지고 등에 땀이 난다."
조선 후기의 학자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1711-1788)가 열여덟 살 되던 새해 아침에 지은 글이다. 흘러가는 세월과 뜨거운 승부를 벌이고 있는 새파란 애송이의 삶의 자세가 정말 숙연할 지경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시를 지은 시인도 있다.
하루에 한 장씩 찢던 달력이 생각난다.
쇠털같이 많은 날이 겹겹이 쌓여 있어
아무리 찢고 찢어도 좀처럼 줄지 않던,
오지도 않던 날을 네댓 장씩 함께 찢어
비행기를 만들어서 이리저리 날리다가
코 풀고 휴지통에다 내동댕이쳐버렸던,
그러다 문득 보면 달랑 한 장 남은 것을
차마 찢을 수 없어 오랫동안 바라보던,
하지만 새 달력이 이미, 대기발령 중이던,
되다만 나의 시 '제야(除夜)'이다. 이렇게 되고말고 살아온 사람이 새해 벽두에 이정형의 시와 임성주의 글을 읽고 있자니, 아닌 게 아니라 부끄러움이 극도에 달하여 얼굴이 붉어지고 등에 땀이 난다. 눌더러 물어볼까, 도대체 올해 나는 몇 살이더냐?

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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