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역사와 허구 사이 '철인왕후'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 시청률 고공행진에도 남는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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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철인왕후'는 12%(닐슨코리아)가 넘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만큼 논란과 불편함도 적지 않다. 역사와 허구 사이에 서 있는 사극이 그 갈림길에서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철인왕후'는 잘 보여주고 있다.

◆시작부터 터진 역사 왜곡 논란

사실 최근 들어 사극에 있어서 그토록 쏟아져 나오곤 했던 역사 왜곡 논란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이제 어느 정도 사극을 실제 역사와는 다른 '상상력'이 가미된 '허구'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는 갑작스레 역사 왜곡 논란이라는, 새삼스러운 시청자들의 반발을 마주하게 됐다.

물론 이 작품의 원작을 쓴 중국 소설가가 '혐한발언'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방영 이전부터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던 드라마였다. 하지만 극중 현재에서 조선시대로 타임리프되어 왕후 김소용(신혜선)의 몸으로 들어간 장봉환(최진혁)이 "주색으로 유명한 왕의 실체가… 조선왕조실록도 한낱 찌라시네. 괜히 쫄았어"라고 하는 대사는 결국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다.

제아무리 퓨전, 아니 판타지 사극이라고 해도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구체적인 문화유산을 '찌라시'라 말하는 대사는 너무 과했고 선을 넘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 번 부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다른 것들도 그렇게 보이는 법인지, 연달아 논란이 계속 이어졌다.

"언제까지 종묘제례악을 추게 할 거야" 같은 대사도 '종묘제례악'을 희화화했다는 논란을 일으켰고, 극중 김소용이 궁을 나와 찾아간 기생집 '옥타정'은 집단 성폭행을 시도하려던 사건이 벌어졌던 옥타곤을 패러디했다는 지적을 받으며 대중의 뭇매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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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의 한 장면. tvN 제공

여기에 극중에 등장하는 실존 역사적 인물인 신정왕후을 희화화했다며 그 후손인 풍양 조씨 종친회 측이 강력 대응하겠다고 나서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결국 제작진은 사과했고 문제가 됐던 '조선왕조실록' 대사를 삭제하고, 드라마 속에 등장하던 '풍양 조씨', '안동 김씨'도 '풍안 조씨', '안송 김씨'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이로써 모든 역사 왜곡 논란이 끝난 건 아니다. 철종과 철인왕후, 순원왕후 같은 이름들은 그대로 쓰고 있어, 드라마가 향후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또 다시 역사 왜곡 논란의 불씨가 지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즉 세도정치 속에서 주색에 빠진 왕으로 역사에 기록된 철종에 대한 색다른 해석이 그것이다. 겉으로는 주색에 빠진 듯하고 별 강단도 없어 보이는 인물처럼 꾸미고 있지만 밤이 되면 궁을 빠져나가 마치 협객처럼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는 인물로 철종이 그려지고 있다는 것. 과연 이런 해석은 괜찮은 걸까.

◆역사 왜곡 논란에도 시청률 고공행진 그 이유

이처럼 시작부터 터진 역사 왜곡 논란에도 불구하고 '철인왕후'의 시청률은 매회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첫 회 8%로 시작한 드라마는 이제 12%를 넘어섰다. 시청률로만 보면 케이블 채널로서 대박드라마라는 평가가 나올 법한 수치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오르고 있는 걸까.

'철인왕후'는 현재에서 과거로 타임리프되어 남성이 여성, 그것도 중전의 몸에 들어간다는 설정만으로도 대단히 파격적인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즉 우리가 익숙하게 봐왔던 사극이 갖고 있던 최소한의 룰들이 이 설정 속에서는 여지없이 깨져버린다.

퓨전사극이나 아예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장르사극이라고 해도 조선시대가 갖는 신분제 사회의 시스템은 하나의 룰처럼 지켜져 왔던 게 사극이 보여줬던 세계다. 하지만 '철인왕후'는 성별 전환 타임리프라는 설정으로 이 시스템을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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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의 한 장면. tvN 제공

바람둥이 장봉환이 빙의된 김소용은 그래서 왕에게 대뜸 반말을 하고, 궁궐을 마구 속옷에 가까운 차림으로 뛰어 다니며, 마치 건달처럼 건들대는 파격적인 모습으로 웃음을 만든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사극 속 신분제의 틀을 무화시키고 그래서 그 억압을 풀어내는 카타르시스를 만든다.

이 부분은 사실 자극적이면서도 '철인왕후'가 가진 강력한 드라마의 힘이 아닐 수 없다. 현재에도 시대착오적 상황들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가 "지금이 조선시대야?"라고 에둘러 비판하는 그 지점이 '철인왕후'에서는 성별 전환 타임리프라는 판타지를 통해 실제 조선으로 가게 된 인물의 거침없는 대사들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파격은 자극적이고 그래서 시청자들은 사극이 늘 제시하던 그 엄숙한 분위기를 깨고 나오는 이 풍자 코미디에 빠져든다. 신분과 성에 다른 차별을 이토록 시원하게 깨뜨리는 사극이라니.

◆하지만 남는 불편함과 사극이 해야 할 선택들

하지만 이 시원한 카타르시스 끝에는 어딘가 불편함이 남는다. 그 파격은 사극이 끌어오곤 하던 시대적 상황들을 파괴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허구지만 왕에게 반말을 툭툭 던지는 김소용은 물론이고 왕의 명령에도 불복하고 맞서는 김병인(나인우) 같은 인물은 역사의 해석을 달리하는 차원을 넘어서 아예 사극이 가진 기본적인 룰을 파괴하는 인물들이다.

물론 이것 역시 판타지 드라마라는 설정만이었다면 어느 정도 납득될 수 있는 부분이었을 게다. 하지만 이 사극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철종, 철인왕후, 순원왕후 같은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은 어찌할 것인가.

이들이 끌고 올 수밖에 없는 역사의 한 자락은, 이 사극이 역사를 벗고 온전한 허구로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아쉽게도 박탈하고 있다. 무언가 사극과 조선시대라는 엄숙하고 권위적인 시공간을 파괴함으로써 자극적인 재미를 주지만, 적어도 조선사회라는 시공간의 리얼리티 같은 역사 자체를 훼손하고 있다는 불편함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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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의 한 장면. tvN 제공

앞부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제 사극을 온전한 역사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말 그대로 시대착오적인 일이 된 지 오래다. 그 많은 사극들을 경험하며 우리는 작품마다 그것이 진짜 역사적 사료에 충실한 정통사극인지, 아니면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지만 거기에 현대적 사관이 담긴 해석을 더하거나 아니면 허구의 인물을 더해 역사가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들을 재연해내려는 퓨전사극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예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과 상관없이 그 과거의 시공간만을 빌려와 상상력으로 채워 넣은 장르사극, 판타지사극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사극에 있어서 정통사극이 옳은가 아니면 퓨전사극이 옳은가 하는 논쟁을 벌이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소재를 가져오느냐에 따라 그것이 정통으로 다뤄지는 게 맞는지 아니면 퓨전으로 다뤄지는 게 맞는지를 판단할 뿐이다.

'육룡이 나르샤' 같은 퓨전사극은 조선 건국의 이야기를 가져오면서 실제 역사적 인물들인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과 함께 분이, 땅새, 무휼 같은 허구적 인물들을 더한 바 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호평을 보낸 건, 역사적 인물들이 한 역사적 사실들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조선 건국 같은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 이런 몇몇 인물들만이 아니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무수한 인물들(민초들)이 함께 했기 때문이라는 걸 허구적 인물들이 말해줬기 때문이다.

즉 이제 사극은 그 역사적 소재를 어떤 사관의 시각으로 다룰 것인가에 따라 정통인지 퓨전인지, 나아가 장르사극인지의 틀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철인왕후'가 풍자 코미디라는 장르를 가져와 사극과 접목시켜 하려는 이야기는 과연 실제 역사적 인물을 필요로 하고 있을까. 아예 가상으로 조선의 시공간만 가져왔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이 선택 하나로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드라마가 불편함을 감수하며 봐야 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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