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태(권영희 글/ 최유정 그림/ 학이사어린이/ 2020)

'순태'는 참 따듯하고 고운 그림동화책이다.
'네가 정말 좋아', '사파리를 지켜라' 등의 동화를 쓴 권영희 작가는 코로나19가 대구를 꽁꽁 묶었던 지난 3월 이 책을 발간했다. 작가는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한테 제일 먼저 이 책을 보여 드리며 "엄마, 귀엽고 사랑스런 이 아이가 바로 엄마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도 직접 만나지 못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눈구름이 찾아와 잠자던 순태를 깨운다. 눈을 비비며 의아한 듯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인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순태는 분홍 장갑을 끼고 빨간 털신을 신고 마당에서 폴짝폴짝 뛰기 시작한다. 사랑스러운 순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순태 볼에 눈송이 하나가 내려앉아 영롱한 눈물방울로 변하는 장면을 만난다. 그 다음부터가 심상찮다. 다시 눈길을 뛰어가는 순태, 멍멍이도 함께 달린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병상에 누운 백발의 할머니가 눈 내리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희미하게 붙은 환자의 이름 '정순태'가 눈에 띈다. 이제 병원이 집이 되어버린 노쇠한 순태는 오늘도 병상에서 바깥만 하염없이 바라본다.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산 너머 무지개처럼 아련한 어린 시절을 보는 건지…….
다음 페이지는 어린 순태와 할머니 순태가 분홍 장갑을 한 짝씩 끼고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아래 한 줄 작가의 말에 눈물이 고인다.
"순태는 요양병원에 계신 제 엄마입니다. 다시 엄마가 어릴 때처럼 눈 위를 폴짝 뛸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누구나 엄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역시 그랬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웠던 팔순의 엄마가 무대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나는 마치 연극을 관람하듯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아, 이제 엄마가 많이 나았구나!' 감격스러워했다. 그때 반대편에서 젊은 엄마가 다가와 팔순의 엄마를 업더니 뚜벅뚜벅 걸어 무대를 빠져나갔다. 화들짝 놀라 눈을 떴을 땐 그게 꿈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벌써 강산이 변할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그날 그 생생한 꿈을 잊을 수 없다. 허약한 엄마를 병상에 둔 채 우리는 일상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마다 돌아가며 형제들이 엄마를 찾아갔지만 결국 엄마는 마지막 가는 길에 젊은 엄마를 불러 함께 가기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권영희 작가의 '순태'는 우리 엄마였다. 귀엽고 사랑스런 아이였던 엄마, 외할머니의 든든한 딸이었던 엄마, 가난한 농사꾼과 결혼해 줄줄이 낳은 자식 뒷바라지하며 밤낮을 모르고 일했던 엄마는 마침내 모든 걸 내어주고 마른 작대기가 되어 병상에 누워 버렸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엄마의 이름은 마지막 병상에 가늘게 붙어 있었다. 우리 곁을 떠나던 그날, 그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엄마한테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사랑하는 모든 엄마께 '순태'를 바치고 싶다. 그리고 도란도란 읽어드리자.
"순태는 폴짝 뛰어보고 싶었어요.
붕 떴다 쿵 내려앉았어요.
하얗게 쌓인 눈이 순태 따라 톡톡 튀어올랐어요."
권영희 작가는 '순태'의 짝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짝꿍의 이야기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지 무척 기대가 된다.
정순희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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