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벌어진 입양아 사망 사건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다시 우리 사회를 휘감고 있다. 최근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가 피해 아동인 정인양의 사례가 다시는 없게 하자는 취지로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를 제안하자 유명 연예인, 정치인 등이 잇따라 동참하면서 반향이 커지고 있다. 한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도 이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시청자들의 분노와 관심이 고조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여야 정치권도 모두 나서 '정인이 사건'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 재발 방지를 다짐하고 나섰다.
정인이가 16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할 당시의 정황은 너무나 끔찍해 글로 다시 옮기기가 힘들 정도이다. 정인이는 눈웃음이 예쁜,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갓 삶을 시작해 생모 품을 떠나 입양된 가정에서나마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어야 할 아이였다. 그러나 입양된 후 수개월 동안 양모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시달렸고 끝내 숨지고 말았다. 너무 참혹하고 가슴 아픈 일이다.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인이는 온전히 어른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는데 양모는 그 어리디어린 아이에게 보살핌은커녕 공포였고 재앙이었고 지옥이었다.
분노의 여론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면서 경찰과 아동보호기관, 입양기관의 잘못이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정인이가 학대를 당한다는 의심 신고를 3차례나 받았지만, 출동 후에 양부모가 부인하는 진술만 듣고 피해 아동 분리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후 관리를 하던 입양기관과 아동보호기관 역시 정인이가 학대를 당한다는 신고를 받았고 정황을 감지했으나 가해 양부모들의 일방적인 진술만 듣고서는 방치했다. 그래서 양부모에 대해 아동학대치사죄가 아니라 살인죄를 적용해 달라는 국민 청원이 줄을 잇고 해당 경찰 책임자를 중징계 해달라는 국민청원도 뜨거우며 해당 입양기관을 거칠게 비난하는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이에 경찰청장과 입양 기관은 고개 숙여 사과했고 해당 경찰 간부들과 담당 직원들은 징계를 받았다.
정치권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아동학대 예방 대책을 강화하기로 했고 국회는 여야가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일명 '정인이법'을 1월 임시국회 내에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아동학대 전담 인력을 확대하고 아동학대치사·중상해 처벌 형량을 더 높이고 피해 아동 알림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의 내용을 담게 된다. 그러나 국회에는 이미 아동학대 관련 법안 90여 건이 소관 상임위에 계류 중이었다. 지금껏 후속 절차에 소홀하다 이제서야 허둥지둥 나서는 꼴이 꼭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관련 법제도를 강화한다고 하지만 기존의 제도가 그리 허술한 것은 아니다. 입양 기관에서 입양 부모가 될 사람들의 건강과 재정 상황 등 관련 서류들을 깐깐하게 요구하고 심층 상담을 거친다. 입양 기관이 입양 부모가 될 사람들에 대해 긍정적 판단을 내린 이후에는 법원에서 입양 부모들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해서 입양이 성립되면 입양기관에서는 1년 동안 정기적 방문을 통해 입양 아동이 잘 자라고 있는지를 사후 관리한다.
기존 제도이든, 제도를 더 강화하든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괴리된 현실이 정인이의 비극을 낳았다. 정인이에 대해 경찰은 학대 의심 신고가 있을 때마다 출동했고 아동보호기관과 입양 기관도 학대 의심 신고에 대응했으나 학대 부모와 피해 아동의 분리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가해 양부모가 학대를 부인하자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고 적극적인 개입을 꺼렸다. 학대 전담 경찰관의 수가 많이 부족하고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도 지적됐다. 정인이 학대 신고가 경찰에 3차례 신고돼 분리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 신고 건수가 충족됐으나 담당자가 다르면 신고 건수가 1건으로만 처리되는 내부 시스템의 문제도 드러났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살펴보면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제도가 더 촘촘히 구성될 필요가 충분히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제도만 강화하지 말고 전문적이고 소명 의식을 지닌 인력의 적절한 배치 등을 통해 현실적으로 잘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책 마련 과정이 더 세심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 관련 부서와 국회의원들의 캐비닛에 있는 자료를 보완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정인이 사건의 전말을 현장 조사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책임의식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가 마련 중인 대책에 입양 전 예비 양부모 검증 강화, 입양 가정 아동학대 발생 시 경찰 등의 공적 책임 강화, 사후 점검 강화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주목할 만한 부분으로 현실적으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대책들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제도가 그럴 듯하게 틀을 갖추었지만 예비 양부모 검증, 입양 후 점검 및 관리 등에서 부족한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가해자인 양어머니 장모 씨는 경찰 수사 결과 "네 살 된 친딸에게 여동생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이유로 정인이를 입양했다고 했다. 입양 사유가 될 만한 말이지만, 정인이를 위한다기 보다는 친딸을 위해 정인이를 입양했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정인이를 잘 키우겠다고 했겠지만 실제로는 친딸의 외로움을 덜어줄 존재로만 인식했을 수 있다. 입양 기관이 장씨 부부에 대해 심층 상담을 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부분을 흘러넘겨 버리지는 않았는지 안타깝다.
예비 양부모 검증 과정에서 성장 과정을 살펴보고 폭력 성향을 짚어보는 등 좀 더 전문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하겠다. 입양 이후 점검 및 관리 과정에서도 학대 유무를 판별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참여가 보완되어야 한다. 친부모가 친자녀를 학대하는 일도 일어나는데 입양 부모의 학대 위험성은 더 클 수 있다는 인식 하에 제도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다만, 선의의 입양 부모들이 이번 사건을 통해 상처를 입거나 피해를 입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자료와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아동 학대는 2만4천604건, 2019년 아동학대로 판단된 피해 아동은 3만45명으로 집계됐다. 또 매년 700~800명가량의 입양이 이뤄지고 있고 이 중 국내입양과 해외 입양은 각각 절반의 비중을 차지한다. 아동학대 사망자 수는 2017년 38명, 2018년 28명, 2019년 42명(잠정치)이다. 학대 피해 아동들 대부분이 보호시설 부족에 따라 일시 보호 후 집으로 되돌아갔고 10~20%가량만 보호 조치를 받았다. 학대 피해 아동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시설 증설 등의 대책도 마련되어야 할 상황이다.
정인이 사건에서 경찰과 아동보호기관, 입양기관의 잘못이 드러났다지만, 어디 이들만의 잘못이겠는가. 정치인들도 소홀했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 반성해야 할 일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 일에 한 마을이 매달려야 한다지만, 한 아이를 보호하는 일에는 가정과 사회, 국가가 나서야 한다. 그래서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에 참여하는 이들과 이에 공감하는 이들 모두 정인이의 비극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데에서 나아가 다시는 이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다짐하고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의로 태어나지는 않더라도 소중한 한 생명이 태어난 이상 온전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온 사회가 나서야 함을 '정인이 사건'이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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