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선교에서 방역 교회로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1920년 1월 6일, 경북 안동에서는 기독교인 모임인 제8회 조선예수교장로회 행사가 열렸다. 이날 모임에서는 1919년 대구경북에서 일어난 3·1만세운동의 영향을 살핀 시찰 보고서가 제출됐다. 보고서를 통해 대구경북 교회는 268개(1920년 11월 6일 현재)로 나타났다. 이는 3·1만세운동 이전 100개 이내에 비해 무려 2.5배가 는 숫자였다.('대구제일교회 100년사', 2004년)

이는 동산병원 의사 출신인 전재규 전 대신대 총장이 지난 2003년 펴낸 '동산병원과 대구 3·1독립운동의 정체성'이란 책 내용과도 통한다. 그는 책에서 "3·1운동 이후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와 대구의 교회는 급성장했으며 불신자들 중에도 기독교 학교나 교회 건축에 거금을 기부하는 사례가 흔히 생겨났다"며 "1923년을 전후해 4년여간 112개 교회를 세웠다"고 기록했다.

대구의 기독교는 1893년 약전골목 옛 제일교회 터에서 전도 활동을 시작하며 1899년 오늘날 동산병원의 출발인 제중원(濟衆院)의 문을 옛 교회 터에 열어 의료선교 활동으로 세를 불렸다. 여기에 3·1운동으로 지역민 관심과 기부까지 겹쳤으니 교회를 '마치 태양계에 별들을 심어 놓듯 병원을 중심으로 원근에 끊임없이 많이 세웠'고 '이 고장에 뿌리를 내린 원동력이 되었다'.

일제강점의 암흑기 때, 특히 3·1운동에 대한 탄압이 엄혹하던 당시 교인의 헌신과 희생 등으로 컸던 역사 배경을 가진 대구경북의 기독교 역사였다. 이후에도 교회는 곳곳으로 퍼졌고 2020년 현재 대구에만도 1천600개 교회에 교인도 30만 명(대구기독교총연합회 회원 교회 기준)에 이를 정도의 교세를 자랑한다. 100년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이런 대구경북의 교회가 요즘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지난해 2월 대구를 덮친 코로나19 이후 3차 대유행에 이르기까지 여러 교회가 전염병 전파에 직간접 관련된 것으로 지목되고 있어서다. 급기야 올 들어 지난 5일 대구기독교총연합회 최원주 회장이 "너무나 죄송하고,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교회와 교인을 대신해 사과까지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를 괴질과의 전쟁에서 힘들지만 지난날의 자랑스러운 선교 성공의 역사를 가진 교회로서 새로운 방역 성공의 기록을 남기는 모습을 새해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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