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주간 몸이 소리를 내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살이 찌는 소리였다. 웃자고 하는 소리로 넘기기엔 제법 진지했다. 병원에 가야하나. 그럼 내과에 가야하나, 이비인후과에 가야하나. 주변에 물어보기도 마땅찮았다. 정신과에 가보라고 할 것 같았다.
시일을 두고 빅데이터 분석하는 심정으로 좀 더 들었다. 뭉게뭉게 뭔가가 부풀어 오르지만 수축되지는 않는 느낌적 느낌이 공감각적 심상처럼 귀로 전달됐다. 겨울바람 소리도 칼날 부딪치는 것처럼 들렸다. 정확히 '챙챙챙'으로 들렸는데 바깥으로 나오면 모조리 할퀴고 찢겠다는 무력시위나 마찬가지였다.
원인은 두 가지로 좁혀졌다. 살 찌는 소리의 볼륨이 최근 들어 웅장해졌거나, 새로운 청력 신공이 생겼거나. 신공 감별은 아내가 맡았다. 청력이란 게 무릇 남의 것을 들을 수 있어야 오디션의 대상이라도 될 텐데 입증이 어려운 게 낭패라며 털어놨다. 무람없이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날이 춥다. 요즘 무릎 아프지 않니?"
◆반복의 마력, 왕복달리기
혹한이 불러온 근 손실과 체중 증가는 무릎 통증을 불렀다. 헬스장 문이 닫힌 지 오래였고 근 손실 만회할 '쇠질'은 기억에서 아득했다. 살려야했다. 내 무릎, 내 근육, 내 라인.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종목으로 택한 건 '왕복달리기'였다. 왕복달리기는 좁은 공간에서도 가능했다. 혹한이라는 기후적 요인, 수감이라는 공간적 요인 등을 극복했다는, 숱한 간증이 남아있는 혁신적 뜀박질이다.
왕복달리기는 '셔틀런'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귀에 익다.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 식 체력훈련법이라며 전파됐다. 20m 구간을 왔다갔다 달리면서 점점 속도를 높인다. 달린이('달리기 초보'라는 뜻으로 달리기와 어린이의 합성어)들이 소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가속없는 단순한 왕복달리기로도 숨이 깔딱거린다.
장소 선정이 핵심이다. 바람이 덜 부는 곳을 찾아내야 한다. 아파트 단지 동과 동 사이에는 여름철 바람길로 에어컨 뺨치는 공간이 있는 반면 겨울철 바람이 갇혀 불어대기는커녕 길을 잘못 들었나 하고 슬금슬금 빠져나가는 곳도 있다. 귀가 시려, 발가락이 시려 중도 포기하는 게 싫다면 명당 발굴의 자세로 찾아야 한다.
40m 정도를 왕복달리기 훈련장으로 삼는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왕복으로 뛴다. 서른 번 정도의 왕복이면 땀샘이 자동문처럼 열린다. 2.4km 거리로 400m 트랙 6바퀴를 쉼 없이 뛰는 효과다. 찬물 샤워도 거뜬할 만큼 땀범벅이 된다.

◆별 일이 다 있구나
달린이들에게 최근 몇 주가 고난의 기간이었던 것은 역대급 한파 탓이 컸다. 특히 지난주 부산의 최저기온이 영하 12.2도까지 내려갔을 정도였다. 부산에서는 1977년 이후 출생자는 경험해보지 못한 온도였다. 다대포해수욕장 앞바다가 얼었으니 말 다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강한 임팩트로, 경험해보지 못한 황당한 일들이 잇따른 한 주이기도 했다. "별 일이 다 있구나"라는 말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와 '별일주간'으로 명명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전무후무한 코로나19 시국이라지만 방역 조치치고는 황당한 정부 대책은 '별 일'의 첫 순위에 꼽힌다. 정부가 수도권에서 학원으로 등록된 태권도·발레 등 소규모 체육시설은 조건부로, 어린이·학생 9명 이하만 이용 가능하도록 영업을 허가한 반면 헬스장 등 실내체육시설은 운영을 금지한 것이었다. 급기야 일부 헬스장 업주들은 '헬스장 오픈 시위'에 나섰다.
기능성피트니스 협회장이, 전국헬스클럽관장협회장이 "이용객 대부분이 성인이어서 (이번 정부 대책은) 우리를 놀리는 이야기라고 생각도 든다"고, "어린이·학생 9명 이하만 이용 가능하다 하려고 밤새 머리 싸매고 연구했냐"고 했다.
"다른 사람 다 주면서 왜 나는 안 주노"에는 단순한 섭섭함을 넘어 인간적 모멸감은 물론 판도라의 상자에서 일찌감치 뛰쳐나갔다는 온갖 악감정이 탈탈 털려 나온다는 걸,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형평성을 망각한 괘씸죄'라는 걸 정부만 몰랐던 것일까.

◆신뢰를 잃은 정책의 종착점은
'별 일이 다 있네'의 또 하나는 '서울시 임신·출산 정보센터' 홈페이지에 게재된 임신 주기별 정보였다. 이런 내용이다.
'냉장고에 오래된 음식은 버리고 가족들이 잘 먹는 음식으로 밑반찬을 서너 가지 준비해 둡니다… 입원 날짜에 맞춰 남편과 아이들이 갈아입을 속옷, 양말, 와이셔츠, 손수건, 겉옷 등을 준비해 서랍에 잘 정리해 둡니다… 화장지, 치약, 칫솔, 비누, 세제 등의 남은 양을 체크해 남아있는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게 합니다…'
웃자고 한 얘기 아닌가. 만삭의 아내가 밑반찬을 차곡차곡 쌓아 냉장고에 넣어둔다니. 온가족 피가 맑아질 각오로 삼칠일을 미역국으로 함께 하자던 동지(同志)적 각오가 떠올랐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지친 시국에 '병맛 코드'로 시민들에게 웃음을 주려는 선한 의도 아닌가, 라고 생각한 건 순진해빠진 바보 녀석의 개그회로일 뿐이었다. 이걸 왜 임신부가 해야 하느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서울시 관계자의 해명이 곧 나왔다. 홈페이지가 만들어진 2019년 6월 당시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임신육아종합포털 아이사랑'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는 거였다. 업계의 시쳇말로 '우라까이'였다.
안타깝게도 온라인 여론이 씁쓸한 뒷맛을 넘어 분노의 침버캐로 말라붙은 뒤였다. 어떻게 하면 이런 내용이 실릴 수 있었을까. 여러 가능성들은 사지선다형으로 도열했다.
①여성 정책에 불만이 있던 남자 직원이 만들어서
②복사해서 붙여 넣었는데 알고 보니 50년 전 자료
③작성자가 웃자고 만든 걸 수용자가 다큐로 받는 중
④서울시의 방침을 잘못 전달한 언론과 독자의 오독 탓

③번이 제발이지 정답이었으면 했으나 ②번이 정답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정부 등 국가기관의 매너리즘이 하다하다 이 지경까지 됐다는 징표로 읽힌다.
태권도는 되고 헬스는 안 된다는 정부 정책도 마찬가지다. 형평성을 따져 내놓은 정책이라는 걸 업주도, 사용자도 쉽게 수긍하긴 어렵다. 정책결정권자가 헬스장에 한 번도 안 가본 게 틀림없다는 말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 신뢰를 잃은 정책은 지속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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