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홍경숙 씨 부친 故 홍순상 씨

1956년 사진관에서 찍은 홍경숙 씨의 아버지 홍순상 씨와 어머니의 약혼사진. 가족제공.
1956년 사진관에서 찍은 홍경숙 씨의 아버지 홍순상 씨와 어머니의 약혼사진. 가족제공.

2021년 신축년, 빈방 한편에 선남선녀의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유독 나의 가슴에 짠하게 다가온다. 부모님의 65년 전 약혼 사진이다.

두 분 모두 북한에서 6.25사변 때에 피난 내려오신 실향민이시다. 홀연 단신 부모님 없이 외롭게 지낸 남한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외롭고 힘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버지는 북한에서 유복한 가정의 막내아들로 공부만 하시다가 전쟁이 발병하는 터에 징병대에 차출되어 남한으로 내려오게 되었고, 그 후 3.8선이 정해진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한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고향에는 부모님, 누님 세 분 이렇게 가족이 계셨다고 하셨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KBS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이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 주인공이 가족을 찾기 위해 팻말을 들고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 아버지도 가족을 찾기 위해 가족의 이름과 사연을 적은 팻말을 들고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며 방송국을 떠나지 못했다. 밤잠도 안 주무시고, 밤을 새운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가족을 찾고자 하는 염원이 애절했던 것이다. 방송을 하고 오면 몇 날 며칠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도 보이시고 밤잠을 설치시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항상 설, 추석 명절이 되면 날짜 없는 헛제사로 기도를 드리곤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엔 "오마니, 보고 싶습니다."라고 하신다. 30년 전 그렇게 고향을 그리워하시고 보고 싶어 하시던 오마니를 뵙지 못하고 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애정이나 그리움이 목말랐던 탓인지 자식에 대해선 유독 애틋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특히 외동딸인 나한테는 소위 지금 말하는 딸 바보인 듯했다. 7~8년 직장 생활을 했던 딸의 퇴근 마중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와 주셨다. 집에서 통근버스 내리는 곳까지 거리가 꽤 됨에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늦은 밤, 매일 마중을 나오셨다. 사정이 있거나 회식이 있어도 항상 데리러 나오시니, 나 어찌 그 사랑을 잊을 수 있을까.

1969년 홍경숙(아래 오른쪽) 씨의 외할아버지 산소에서 부모님과 큰오빠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 가족제공.
1969년 홍경숙(아래 오른쪽) 씨의 외할아버지 산소에서 부모님과 큰오빠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 가족제공.

암 투병 중이실 때도 어머니가 식사를 드릴 때보다 딸이 드리면 식사량이 더 많다며 어머니가 종종 나에게 부탁하곤 하셨다. 북한에서는 설 명절엔 떡국 제사 대신 만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꿩고기를 고명으로 한 만두. 병환에 계실 때 만두가 드시고 싶다고 해서 북한식 만두를 빚어 드린 기억이 있다. 만두를 빚는 날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를 빚으며 어머니, 아버지에게 이북의 고향 이야기를 듣곤 했다. 지금도 만두를 빚을 땐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나도 내 딸에게 북한식 꿩 만두를 자세히 전수해 주려고 한다.

치매가 있는 외할머니가 집을 나가면 버선발로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찾으셨다. 동네 방송으로 할머니를 찾으러 오라 하면 제일 먼저 달려나가 외할머니를 집으로 모셔오고, 지극정성으로 돌보셨다.

이제 곧 아버지와 내가 함께했던 봄이 돌아오겠지. 그래도 그때가 행복하고 그립다. 비록 병중이라 너무 꼬챙이처럼 마른 손과 발을 씻겨드렸지만 함께 했다는 것이 그립다. 아버지가 베푼 것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었지만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잘한 것보다 못해 드린 모든 것이 후회로 남겨지니.

1983년 봄 홍경숙 씨의 아버지 홍순상 씨가 집 앞에서 찍은 사진. 가족제공.
1983년 봄 홍경숙 씨의 아버지 홍순상 씨가 집 앞에서 찍은 사진. 가족제공.

죄송해요 아버지, 아버지께서 그렇게 북에 계신 오마니를 보고 싶어 하셨듯이 아버지, 저도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하늘나라에서 아프지 않고 편안하시죠?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님들도 만나셨어요? 아마도 아버지도 주님의 품 안에서 편안하시리라 믿어요. 제가 항상 기도드리니까요.

그리고 엄마 걱정 마세요. 지금은 몸이 조금 안 좋으시지만 엄마도 낫기 위해 노력 중이고 저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엄마 좀 지켜주세요.

훗날 처음 어머니, 아버지가 선남선녀로 만나던 것처럼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셔야 해요. 이렇게나마 딸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글로나마 전합니다.

아버지의 외동 딸 숙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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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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