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경자년에는 '애완 쥐' 만 검색해도 정보가 넘치고 넘쳤다. 햄스터, 팬더마우스, 친칠라부터 여차하면 다람쥐까지도 반려동물로 비벼볼 만했다. 하지만 올해는 신축년. 소의 해가 아니던가. 소를 반려동물로 키운다는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싸움소를 키우는 조교사가 있기는 하지만 반려동물의 범주에 넣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많다. 그렇다고 소와 인간의 우정을 써 내려가기엔 워낭소리를 능가할 자신이 없다.
소에 대한 집착이 사그라들던 찰나 경북 의성에서 재밌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 24마리가 사는 우사를 제 집 마냥 들락거리고 제 덩치보다 수십 배는 큰 소에게 주먹질을 서슴지 않는 불량 고양이가 있다는 제보. 소도 맞고, 반려동물도 맞다. 신축년 첫 반려동물 지면에 딱 어울리는 이야깃거리가 아닐 수 없다.


◆ 6개월차 우사 지킴이, 내 밥값은 한다 야옹~
"음메~" 묵직한 저음이 울려 퍼지자 "야옹~" 청아한 고음이 뒤를 따른다. 김대혁(24) 씨가 운영하는 우사에는 매일 아침 앙상블 공연이 열린다. 주인공은 24마리 소와 고양이 카우. 카우는 6개월 전부터 대혁 씨의 우사에 살고 있다. 카우의 하루는 우사를 둘러보는 일로 시작된다. 대혁 씨가 부르면 부리나케 달려와 소 밥 주는 여물통 앞을 지키고 선다. 하지만 업무에 집중하는 것도 잠시. 소 밥 주는 대혁 씨를 살피는가 싶더니 밥 먹고 있는 송아지 옆을 기웃댄다. "이 녀석 또 송아지 밥 먹네. 먹어도 건강에는 별문제는 없다지만, 제 밥이 수북이 쌓여있는데도 송아지 밥 먹는 이놈 때문에 골치 아파요" 송아지 사료가 달아서 일까. 카우는 호시탐탐 송아지 사료를 노린다. 사료뿐만이 아니다. 소 물 통에 있는 물까지 할짝 할짝 핥아 댄다. 발이라도 헛디뎠다간 물통에 빠질 기세다.
이번에는 우사 내부 순찰에 나선 카우. 덩치 큰 소가 무섭지도 않은지 서슴없이 들어간다. 소들도 카우가 다가가면 우르르 몰려온다. 하지만 순찰은 핑계일 뿐. 톺밥이 깔린 바닥에 드러눕더니 소가 핥아주는 그루밍(털에 붙은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혀에 침을 묻혀 몸을 닦는 행위)에 온 몸을 맡긴다. "저러다 소 뒷발에 밟히기라도 하면 어떡하나요?" 기자의 물음에 대혁 씨는 콧방귀를 뀐다. "카우가 어떤 얜데요. 소가 맞으면 맞았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냥냥 펀치를 날리는 카우. 극진하게 모시는 소의 1급 서비스에도 제 기분 따라 팩하고 돌아선다.
그렇다고 꾀만 내는 밉상 직원(?)은 아니다. 카우도 제 밥값은 한다. 카우가 우사에 살기 시작하고부터는 새가 사라졌다. 소 밥 먹는 곳에 배설하고 가는 새들을 쫓는 카우 덕분. 배설물은 소 여물을 부패시켜 자칫하단 우사에 설사병이 돌 수도 있다. 그뿐 만인가. 대혁 씨네 우사에는 쥐도 박멸됐다. 쥐 잡기는 보통 대혁 씨가 없을 때 해치우곤 하는데 어느 날은 갑자기 큰 쥐를 잡아와 대혁 씨 앞에 턱하니 내어 놓았다고. 큰 쥐를 물고 달려오는 카우의 모습에서 늠름함을 넘어 숭고함까지 느껴졌단다. 아픈 송아지를 위로하는 일도 카우 몫이다. 대혁 씨 우사에는 VVIP룸이 있는데 바로 아픈 송아지나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송아지들이 지내는 이글루같이 생긴 공간이다. 내부에 난방기를 틀어 따뜻하다 보니 카우는 종종 이곳에서 잔다. "자면서도 송아지들 상태를 꼼꼼이 확인한다구요. 잔머리 부린다고 생각마세요!"


◆ 우사 서열 1위에게도 슬픈 사연은 있답니다
사실 카우는 길고양이 출신이다. 6개월 전 비가 많이 오던 날 대혁 씨는 차를 타고 가다 길에서 울고 있는 카우를 발견했다. 어려 보이는데 엄마도 없이 혼자 울고 있는 모습을 차마 못 본 채 할 수 없었다. 가여운 마음에 대혁 씨는 카우를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왔다. 하룻밤은 우선 집에서 재웠지만, 집은 카우를 키우기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다. 이미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고, 집냥이(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카우는 우사에 살게 됐다. 급한 대로 데려온 우사가 마음에 든 걸까. 카우는 기특하게도 우사에 잘 적응했다. 덩치 큰 소들에게 서슴없이 다가갔고, 소들도 그런 카우를 두 팔 벌려 반겼다. 그야말로 묘생역전이다. 커다란 우사가 모두 제 집이니 말이다.

우사를 점령한 군식구의 성공 스토리가 소문이라도 난 걸까. 대혁 씨네 우사에는 유난히 길고양이 방문이 잦다. 대혁 씨도 우사에 상주하는 게 아닌지라 카우의 사생활을 전부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카우와 놀고있는 길고양이 몇 마리를 마주할 때면 "아 이곳에서 내가 모르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구나" 라고 생각한다고. 우사에서 5분 거리에 창고가 있는데 그 곳은 또 다른 길고양이 가족이 점령했다. 엄마 길고양이가 아기 3마리를 낳았는데 독립해서 나갈 줄 알았던 녀석들은 어느새 창고에 눌러앉았다. 대혁 씨 가족들은 돌아가며 길고양이 식구의 밥을 챙긴다. "길고양이 평균 수명이 3년이라고 하잖아요. 그 말이 참 가슴 아프더라구요. 누군가는 우사가 고양이들에게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가 해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길고양이들에게 베푸는 게 큰 잘못은 아닐꺼라 믿어요"


◆ 각자 처한 환경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상생
'집에서 키워 주면 안 될까요' '예방접종은 하셨나요' '밥이 좀 부실한 것 같네요' 카우에게 달린 수백 개의 댓글을 펼쳐 보이는 대혁 씨. 제 자식 자랑이라도 하나 싶었더니 댓글 내용이 심상찮다. 고양이 한 마리가 뭐라고 댓글까지 달리냐고 생각하면 안 된다. 카우는 전국구 스타다. EBS '고양이를 부탁해'에 출연한 이후 카우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관심은 때론 독이 된다. 대혁 씨는 방송이 나간 후 길고 긴 고민에 빠졌다.

"방송이 나가고 우사 환경이나, 카우의 위생상태에 대해 걱정하는 댓글들이 많이 달렸어요. 단편적인 방송만 보고 오해를 받으니 좀 속상하더라고요" 댓글의 조언대로 카우를 집에 들여야 하나 고민도 했다. 하지만 집고양이는 집 고양이 대로, 카우는 카우 대로. 각자의 환경에 적응한 고양이들이 보다 편하게 살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실제 카우는 대혁 씨 집에 사는 고양이와는 생판 다르다. 야생에 적응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카우를 집안에 가둬 키우는 것 자체가 사람의 욕심일 수도 있다. "쥐 잡았다는 이야기 들으셨죠. 카우는 야생에서 살기때문에 발톱도 깎아주지 않아요. 마구 뛰어다니며 에너지도 넘치고 무엇보다 우사를 제 집마냥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물론 카우의 변론은 들을 수 없다. 집에 가고 싶은지, 우사에 남고 싶은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혁 씨와 카우가 서로의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것. 물론 우사 한 켠 카우가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뒀고, 발정기에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않도록 중성화 수술도 고민 중이다. "카우와 소, 그리고 저희 가족은 묘연으로 묶였어요. 끝까지 서로 아껴주며 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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