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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노무현 대통령이 문재인 정권을 본다면

이재협 편집부국장

노무현 전 대통령.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 연합뉴스
이재협 편집부국장
이재협 편집부국장

"노무현 후보는 포퓰리즘 정치를 하는데 아마 지켜봐, 대통령 될 거야." 20년 전이다. 2002년 12월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대구에서 열린 한나라당 필승결의대회장에서 고인이 된 국회의원이 정치부 기자였던 필자에게 한 말이다.

"우리 당 이회창 후보는 말이야, 맞는 말만 하는데 머리로만 이해가 가고 가슴엔 반응이 없어, 근데 노 후보 연설을 들으면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들어."

유명한 경제학자이기도 한 이분의 말을 뚜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 뒤지고 있던 노 후보가 드라마 같은 역전을 이루어내며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사회는 에너지가 넘쳤다. 외신이 '한강의 기적은 끝났다'고 했던 IMF 사태를 조기 졸업하고 서울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기적 같은 4강 신화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기술주들이 잇따라 상장하며 '기술대국 한국'의 신화가 이루어질 것이란 희망이 흐르던 시절이었다.

노 대통령 취임 이후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조선조 이후 오직 수도는 서울이라는 '절대 명제'에 익숙한 국민들에게 국토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수도 지방 이전을 내세웠다. 야당의 반대가 거세지자 수도권 소재 공기업 지방 이전을 핵심으로 한 지방 혁신도시를 밀어붙였다. 또 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 설립안을 내밀었다. 서울은 불변의 수도라는 진리와 사법시험을 거쳐야 법관이 되고 의대를 가야 의사가 된다는 상식을 통째로 깨는 시도였다.

압권은 '검사와의 대화'다. 절대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평검사와 방송 생중계를 하며 설전을 벌였다. 파격이었고 좋게 보면 소통이었다. 평가야 다르겠지만 우리 국민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대중 정치를 그리고 기득권이 뭔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물론 당시는 여소야대 정국인 영향도 있지만 노 대통령은 그 나름 '사과'와 '협치'의 정치를 추구했다. 재벌 개혁 등 진보 정책 반대 여론이 일자 속도조절론을 내세웠고 측근 금품 수수 비리가 터지자 자신의 책임이라며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노 대통령과는 결이 다른, 그리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포퓰리즘 진통'을 겪고 있다.

포퓰리즘은 사전적으로 '대중에게 호소해 다수를 위한 정책을 수립한다'는 긍정적 의미를 갖고 있다. 반대는 '대중영합적 정책을 펴며 실제로는 비민주적 행태와 독재 권력을 공고히 한다'는 의미다.

현 정부 정책을 보자. 미분양이 넘칠 때 집 사라고 했던 정부가 집값이 폭등하자 공급 정책 변화는 없이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다주택자를 투기 세력으로 몰며 징벌적 과세에만 몰두하고 있다. 기업들이 목 놓아 반대하는 '기업규제 3법'을 밀어붙이며 경제민주화를 통한 발전을 이루겠다고 한다. 지난 1년, 국가채무는 100조원이 늘어 850조원에 이르지만 3차 재난지원금 시행도 전에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꺼내 들고 있다.

또 '원전은 경제성이 없다'며 현 정권만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고집하고 있고,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울산시장 선거 비리' 등 현 정권을 겨냥한 검찰 수사는 더디기만 하다. 현 정권 임기 내 핵심 비리 수사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검찰 개혁에 방해가 된다는 '그들만의 논리'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적폐로 몰아 한동안 식물 총장을 만든 데다 남은 임기도 6개월 남짓인 탓이다.

노 대통령은 현 정권을 어떻게 평가할까 궁금하다. 그리고 두렵다. 미래 세대가 현 세대를 어떻게 평가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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