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이 전 세계적인 '영웅'으로 칭송되는 시대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월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때부터 3차 팬데믹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까지 수많은 의료진이 감염병과의 전쟁 최전방에서 긴 사투를 벌이고 있다.
특히 가장 많은 시간을 환자들과 부대끼는 이들이 바로 간호사들이다. 감염병이라는 특성상 '격리'가 기본이 되다 보니 간호사에게 주어지는 노동의 강도는 몇 배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입고 벗기 힘든 데다 호흡까지 벅찬 레벨D 방호복도 문제지만, 거동이 힘들거나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요양병원 이송 환자들의 수발까지 모조리 이들의 몫이 됐다.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판국이다. 걸핏하면 문을 열고 뛰쳐나가는 환자도 있고, 물도 떠다 주고, 대소변 수발까지 해야 한다.
현장에서 일했던 한 간호사는 "간호·간병 업무만도 힘든데 택배와 사식 업무가 이렇게까지 많을 줄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기사들이 건물 밖에 놓아두고 간 택배를 옮겨 환자들에게 일일이 전달하는 일부터, 환자식이 맛없다며 주문한 음식을 반입해주는 일 등 가욋일도 무시 못할 업무량이란다.
원래도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간호사는 상당히 고된 직업으로 꼽힌다. 교대 근무에다 생명을 다룬다는 직업적 특성과 턱없이 모자란 인력 탓에 지금껏 막무가내식 '살신성인'을 강요받아왔다.
우리나라에서 간호사는 '장롱면허'가 많은 대표적 직업이다. 2018년 기준 전체 면허 소지자는 39만5천 명에 육박하지만 실제 병의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20만 명에도 못 미쳐 실제 활동 인력은 49.1%(OECD 평균 68.2%)에 불과하다. 간호사 정원을 늘리는 데만 급급했을 뿐 정작 그들의 호소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렵게 간호사 면허증을 취득하고도 일을 포기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열악한 노동환경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1천 명당 간호사 수는 3.5명으로 OECD 평균 7.2명의 절반 수준이다. 일이 힘들다 보니 퇴직률이 높고, 인력 공백은 경험이 부족한 신규 인력 혹은 기존 동료들에게 가중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로 노동강도는 더욱 극한으로 치달았다.
그런데 코로나19 위기가 1년 가까이 지속되는 동안 정부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과연 이들의 희생에 감사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해줬던가. 간호사 인력 정원을 정한 의료법 시행규칙은 50년 넘게 개정되지 않고 있다.
눈물로 하루를 버티고 탈진을 거듭하면서도 사명감으로 버티다 끝끝내 현장을 이탈할 때까지 간호사들의 노동현장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더 악화됐을 뿐이다. 지난해 봄 이후 3차 팬데믹이 폭증할 때까지 반년 가까운 시간이 있었지만 정부는 인력 충원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 K방역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도외시했던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말로만, 마음으로만 이들을 위로할 때는 지났다. 의료는 결국 사람의 일이다. 병상과 장비 확보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들을 돌보는 인력이 생명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의료진이 무너지면 환자의 안전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간호사를 돕기 위해 코로나 병실 근무를 자처했던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는 당시 경험담을 담은 '당신이 나의 백신입니다'란 책에서 "간호사들의 희생이 있어야만 유지되는 방역과 보건의료체계는 이미 정상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간호사들의 노동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지, 그리고 적절한 보상을 하고 있는지부터 짚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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