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는 안 되는 마케팅이 있다. 타인의 슬픔을 팔아 이익을 보는 행위다. 그런 마케팅이 탄생했다. 바로 '정인이 굿즈'다. 최근 인스타그램에는 '정인아 미안해'라는 문구가 적힌 상품을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당연히 사람들은 분개했다. 세상의 빛을 본지 고작 16개월이 된 영아의 죽음이었다. 그 눈물을 이용한 마케팅이라니.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의 탄생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첫 방송을 볼 수 없었다. 정인이 사건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6년 전 아들이 태어난 이후로부터 생긴 버릇이다. 아빠가 되고 나서부터는 아동 학대에 관해 자동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일어나 걷기 위해 얼마나 숱하게 넘어지는지, 얼마나 우리 어른들이 손을 내밀어 줘야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을 도배한 '정인아 미안해'도 할 수 없었다. 진짜 미안해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꿀게'라는 말은 무책임하게 들렸다. 특히 이런 문구를 써 스케치북을 든 사진을 언론에 배포한 정치인의 모습은 역겨웠다.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우리의 나약함이 들통 나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했다.
광고인들은 세상에 작품을 선보일 때 다음의 사항을 고민한다.
1. 이 광고로 누군가가 자살하면 어떡하지?
2. 이 광고로 생계가 끊어지는 사람이 생기면 어떡하지?
3. 이 광고로 어느 가장이 직업을 잃으면 어떡하지?
4. 이 광고가 아이들에게 불량식품을 사먹도록 하면 어떡하지?
5.이 광고가 교육 수준이 낮은 노년층을 속여서 돈을 빼먹으면 어떡하지?
물론 광고를 만들 때마다 항상 이런 부분을 체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본이다. 마치 과일 가게에서 사과를 팔 때 썩은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고 파는 것과 같다. 광고도 그렇다.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내놓은 광고엔 어김없이 악플이 달린다. 광고 카피는 토시 하나에 따라서 보는 사람의 기분이 달라진다. 광고 문구가 누군가의 열등감을 자극하기도 한다. 광고 디자인은 남자 이미지를 쓰느냐 여자 이미지를 쓰느냐에 따라 불평등에 관한 악플이 달린다. 그만큼 사람들은 광고에 예민하다.
광고에도 윤리가 있다. 이 윤리가 무너지면 우리 삶이 무너진다. 우리는 하루 5,000여개의 광고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우리는 아침에 눈떠서 밤에 눈감기 직전까지 광고에 노출되어 있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채널의 등장으로 누구나 미디어가 된 세상이다. 심지어 요즘은 1인 미디어 커머스가 트랜드이다. 누구나 쉽게 광고하고 마케팅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내 지갑이 두둑해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누군가의 살집을 도려내어 내 지갑에 쑤셔 넣지는 말자. 그 지갑이 지금은 두툼할지라도 언젠가는 썩는다. 우리 몸은 오프라인에 있지만 우리는 사실상 온라인에 살아가는 시대이다. 그럴수록 예의를 갖추자. 인간관계에만 예절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케팅에도 도리가 있다. 우리 최소한 그것만은 알고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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