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기일이 다가옵니다. 2006년 음력 정월 초이레 77세로 돌아가신 지 14년이 다 되었습니다. 그날은 2월 4일 입춘이라 아침에 대문에 입춘부를 붙이러 나가보니 상당히 추웠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당뇨약을 받으러 가신다고, 아침에 샤워하신 뒤 준비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하셨지요. 밥을 조금 남기시길래 다 드시라고 권하며 설 차례상에 올린 조기를 밥숟가락 위에 올려 드렸습니다. 아침 잘 드시고 시간이 되어 약 받으러 나가시는데 날씨가 추워 제가 차로 태워 드린다고 기다리시라 하고 옷을 챙겨 입는 동안에 방에 계시던 어머님은 숨을 모으고 계셨습니다.
119에 연락하고 김천의료원으로 모셨으나 어머님은 그 길로 일어나지를 못하셨습니다. 당뇨로 고생하시다가 경북대 병원에서 퇴원하고 우리 집으로 오신지 9년 11개월 만입니다.제가 아침마다 인슐린 주사를 놓아드린 덕분인지 10년을 건강히 잘 지내시다 돌아가셨습니다. 나중에 아침 잘 드시고 돌아가신 이야기를 들으신 고향 할매들은 죽을 복이 어찌 그리 좋으냐고 부러워하시더군요.
저는 김천에서 30년을 살다가 학교에서 정년퇴직하고 2014년에 청도 고향으로 돌아와 이듬해부터 경로당 총무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우리 마을에서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지도하며 2019년에는 윗동네까지 맡았습니다.
어머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셨지만 다른 할머니들은 학교 근방에도 못 가 한글을 아시는 분보다 모르는 분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글을 지도해 은행에 가서 자기 이름이라도 쓰시라고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어머님 친구분들이 대부분이라 정성을 다해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할머니들도 모두 재미를 느끼고 열심히 하셔서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나아집니다. 어머님이 계셨으면 옆에서 같이 가르쳤을텐데라는 생각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2018년 경상북도 한글교실 시화전에서 한 분이 입상하시더니 2019년에는 편지쓰기 최우수상과 입선 4명, 시화전 우수상과 입선 1명 등 작품을 제출한 7명 모두 상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모두 못골댁 아들 잘 낳았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항상 어머님을 대하듯 열심히 한 덕분이라 여깁니다.
어느 해에는 외가 형님의 전화를 받고 예초기를 가지고 가서 외조부모님과 외삼촌, 외숙모님 산소 벌초를 해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 외조모님을 뵌 이후로 처음으로 산소에 가서 절을 하고 벌초를 해드리며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부산 부전역 인근에서 벨벳 공장을 하시던 외삼촌 댁에는 양을 몇 마리 키우고 있었지요. 어머님을 따라 외가에 가면 귀한 외손자 왔다고 장롱에 넣어둔 아끼는 양털 이불을 끄내어 덮어 주시던 외조모님이 생각났습니다. 외숙모님도 시골에서 왔다고 문방구에서 크레파스와 공책을 듬뿍 사주시고 그 당시에는 귀한 토마토를 사서 설탕을 듬뿍 뿌려주신 일이 생각나 술을 한잔 올리며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머님과 같이 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6·25전쟁에 참전을 하시고 면사무소에 다니신 아버님과 증조모님까지 계시는 대가족 맏며느님이신 어머님의 정성으로 자란 우리 5남매도 모두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영희 동생도 하는 사업이 잘되어 우리 아들 신규와 자기 아들 상원이까지 같이 사업을 하면서 회사를 키우고 있고, 만희 동생도 세종대학교에서 정년퇴직했습니다. 박 서방도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했답니다.
막내 김 서방도 운송 회사를 차려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가을에는 청도에서 첫 생산한 감말랭이를 일본으로 수출하는 선적식을 하는데 이승율 청도군수님도 오셔서 우리가 고성 이씨 외손이란 걸 아시는 군수님이 반갑다고 하시며 수출품 운송을 책임진 김 서방 내외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준호, 준서 두 증손자도 공부 잘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명절이면 차례상 차림부터 집사 노릇을 하며 조상님 모시기를 잘 배우고 있습니다. 잘 자라서 나중에 집안을 빛내리라 믿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후손들이 잘되라고 도와주십시오.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춥습니다. 춥지도 않은 그곳에서 아버님과 두 분이 행복한 시간을 많이 가지십시오.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맏아들 윤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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