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월급만 믿다가 '벼락거지'…"나만 빼고 다 돈벌었다"

주식·가상화폐 열풍에 가슴 쓰린 청년들
만나면 돈 벌었다는 주식 이야기에 친구와 연락 끊어
뒤처질까 두려워 '패닉바잉'에 되레 손해 봤다는 사례도 속출
투자에 참여 않는 사람도 가슴 아프긴 매한가지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중소기업 1년차 직장인 이현재(30) 씨는 요즘 지인과 만난 자리에서 소외되곤 한다. 대화의 주제가 주로 주식과 비트코인으로 모아지기 때문이다. 학자금 대출·월세·부모님 용돈·각종 공과금 등을 떼고 나면 주식 등에 투자할 만한 시드머니(초기자금)가 마땅치 않은 이 씨에게 투자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부모님도 어릴 적부터 "주식하면 돈 다 잃는다"고 당부해온 터라 더욱 그렇다.

이 씨는 "친구들이 9개월 전부터 '삼성전자와 테슬라 주식을 사라'고 노래를 불렀을 때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면서 "그런데 최근 주가를 보니 그때 대출까지 끌어와 샀으면 돈을 벌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 우울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월급만 바라보고 살면 '벼락거지' 못 면한다는 말이 이제야 실감이 됐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주식·가상화폐 등 자산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투자 흐름에 함께하지 못한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이에 '나만 빼고 다 돈 벌었나' 싶은 생각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신조어)해 패닉바잉(급등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구매하는 행위)하는 사례도 속출해 되레 손실을 봤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상승장 놓친 취준생의 허탈감

공기업 취업준비생 겸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장모(28·대구 달서구 상인동) 씨는 10만원 단위로 주식에 투자하는 소액주주다. 그는 "요즘 같은 불장(상승장)에 목돈이 없다는 게 정말 서럽다"고 말했다. 장 씨는 "이미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대학 동기들은 천만원 단위로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단체 채팅방에 연일 '7만전자·8만전자·9만전자·10만전자 가자'는 말이 나올 때 나도 모르게 박탈감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1천만원 넣어서 하루 만에 50만~60만원 벌었다'며 자랑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알바를 도대체 왜 하나 싶다. 가뜩이나 공채 자리도 없는 시기에 공부가 더 안 되는 것 같아 취업하기 전까지 친구들과 연락을 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투자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가슴이 아프긴 매한가지다.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일감이 끊겼다는 달서구의 신모(40) 씨는 "하루 벌기도 힘든 세상에, 또 프리랜서 50만원 지원금 받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상황에서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버는 사람도 있는 게 놀랍다"며 씁쓸해했다.

◆'묻지마식 주식 투자'에 되레 손실

상승 기류에 타지 못할까 두려워 '묻지마'식 투자를 했다가 후회막급하는 사례도 속출한다. 김모(33·대구 수성구 범어동) 씨는 2018년 1월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원금의 70% 이상을 잃은 적이 있어 위험자산과는 담쌓고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번 새해에 마음을 바꿔 당장 은행 어플로 예·적금을 해지했다. 주위 친구들의 비트코인 수익 인증에 결국 시세차트를 들여다보게 됐고, 불과 일주일여 만에 30% 이상 급등한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서다.

김 씨는 "이번엔 진짜다"라는 생각에 무심코 1천만원을 비트코인에 올인했고, 공교롭게도 구매를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15% 이상의 마이너스를 경험했다. 김 씨는 "돈을 파쇄기에 넣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지난번의 공포가 떠올라 투자를 철회했고, 순식간에 150만원가량 잃었다"고 말했다.

투자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주린이인데 영끌해서 5천만원을 주당 9만5천원으로 삼성전자에 넣었다. 계속 떨어지는데 어떡하냐'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연구하며 소신껏 투자하기보다도 부화뇌동하는 투자자들도 상당수 있다는 얘기다.

박추환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요즘 누구나 주식·가상화폐로 빠른 시간에 큰 수익을 꿈꾼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통한 만족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의 방증"이라면서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집 산다'는 일반적인 청년들의 목표가 아무리해봐야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런 기류가 강하게 형성됐다"고 했다.

박 교수는 "경제성장 관점에서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축이 많이 기울어졌다"며 "버블이 터지면 또다시 가지지 못한 자나 정보 접근성이 낮은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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