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황수영의 자카르타 체류기] 4. 인도네시아 섬 여행, 블리퉁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인도네시아의 섬은 발리다. 섬나라인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관광지답게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연결되는 직항이 많고, 영어도 잘 통하는 편이다. 하지만 짧은 일정으로 자카르타에서 발리로 여행하려면 최선은 아니다. 자카르타에서 발리까지 비행 거리는 약 2시간, 1시간 시차가 있어 최소 2박 3일은 있어야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알게 된 섬이 바로 블리퉁(Belitung)이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50분이면 도착하는 블리퉁은 1박2일 빠듯한 일정으로 자카르타를 벗어나기에 적격이다.

블리퉁에서 유명한 해변인 탄중 팅기.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사람은 우리 밖에 없었다.
블리퉁에서 유명한 해변인 탄중 팅기.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사람은 우리 밖에 없었다.

지난해 코로나 19가 터지기 직전에 친구와 함께 주변에서 주워들은 정보를 중심으로 블리퉁 여행 계획을 짰다. 발리행 비행기엔 외국인 승객이 많았지만, 블리퉁행 비행기에는 대부분 가족 단위의 인도네시아 여행객들이었다. 블리퉁은(4,800km²)은 제주도 면적(1,849km²)보다 2.5배 정도 큰 섬이다. 블리퉁을 찾는 여행객들은 아름다운 화강암과 백사장으로 유명한 탄중 팅기(Tanjung Tinggi), 탄중 클라양(Tanjung Kelayang) 해변을 비롯해 스노클링 등 바다 체험을 할 수 있는 호핑 투어를 즐긴다. 특히, 블리퉁의 시골 학교를 살리려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도네시아 영화 '무지개 분대 (Lakar Pelangi)'가 2008년 개봉해 흥행에 성공하면서, 영화 배경인 블리퉁의 인기도 인도네시아에서 더 높아졌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섬이라곤 발리만 경험한 나는 블리퉁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힌두교가 중심인 발리에서는 술을 찾아 헤맨 적이 없었지만, 인구 대부분이 무슬림인 블리퉁에서는 술에 엄격한 문화 때문에 호텔을 벗어나면 식당에서도 맥주를 찾기 어려웠다(참고로, 자카르타도 슈퍼마켓, 편의점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 그래서 맥주가 그리울 때면 귀찮지만 대형 마트 식품관에 마련된 별도 공간을 찾아야 한다). 저녁 식사를 한 해산물 식당에서 맥주를 주문하자, 종업원은 당황하더니 콜라, 생과일주스가 잔뜩 적힌 음료 메뉴를 가져왔다. 그래도 자카르타에선 식당에 가면 맥주를 마실 수 있었는데, 해산물 요리와 파파야 주스 조합은 아무래도 아쉬웠다.


우리는 맥주에 대한 집착을 다음 날에도 포기하지 못했다. 구글 지도의 식당 후기를 검색해 맥주를 파는 식당을 어렵사리 찾은 뒤 택시로 타고 달려갔지만, 그 식당은 망해버렸는지 입구조차 찾기 힘들었다. 그래도 "이 식당에 가면 맥주를 마실 수 있다"고 구체적인 정보를 남겨준 이름 모를 외국인이 고마웠다. 아마 그들도 우리처럼 블리퉁에서 맥주 파는 식당을 찾아다니다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맥주 후기'를 남겼을 테다. 그렇게 다시 구글 지도를 검색해 맥줏집 한 곳을 겨우 찾았다. 한국인의 집념으로 찾은 그 식당에서 에어컨도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마신 인도네시아 맥주 빈땅(Bintang)은 이번 여행의 최고 성취였다.

블리퉁에서 유명한 해변인 탄중 팅기에 갔을 때도 신선한 문화 차이를 경험했다. 해변에 도착해 비키니로 갈아입고 입수 준비를 한 뒤 주변을 둘러보자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무리 둘러봐도 몸을 노출하고 수영하는 여성이 보이지 않았다. 성인 여성들은 물론 다섯 살 정도 된 여자아이들도 히잡을 쓴 채 물놀이를 하는 모습은 인도네시아가 무슬림 국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택시 기사님의 추천으로 간 식당에서 대게 요리를 주문했다. 맥주가 그리워지는 맛이었다.
택시 기사님의 추천으로 간 식당에서 대게 요리를 주문했다. 맥주가 그리워지는 맛이었다.

블리퉁은 발리 같은 유명 관광지에서 느끼지 못한 시골의 순박한 맛이 있었다. 여행 첫날 택시 기사님에게 구글 검색으로 알게 된 식당으로 가달라고 부탁하자 영어가 서툰 기사님은 구글 번역기를 통해 '가게가 문 닫았다'고 했고, 우리가 두 번째로 선택한 식당을 말하자 '그곳은 맛이 없다'는 번역이 돌아왔다. 충격이었다. 목적지까지 손님을 데려가면 그만일 텐데, 맛없는 식당에 가서 실망할 우리가 걱정됐던 것일까. 기사님은 해산물 전문점 한 곳을 적극적으로 추천했고, 의심이 많은 나는 기사님이 추천한 식당을 구글에 검색해 후기를 확인했다. 나쁘지 않았다. 책임감 있는 동네 주민의 추천을 믿고 가보기로 했다. 기사님 추천 식당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해산물 전문점이다. 식당에 도착해 택시비를 계산할 때 잔돈이 부족했는데 기사님은 괜찮다며 택시비를 할인해 주셨다. 자카르타와 발리에서 겪지 못했던 호의였다.

1만7천 개가 넘는 섬이 있는 인도네시아에는 가보고 싶은 섬이 많다. 인도네시아의 몰디브라고 불리는 까리문자와(Karimun Jawa), 코모도왕도마뱀을 볼 수 있는 코모도섬과 서핑 성지인 발리 등 마음 속에는 여행 목록이 가득하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그 날을 간절히 기다려 본다.

<황수영 소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직장인. 우리나라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 자카르타와 이곳에서의 생활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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