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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집 잘 지키라 했지 주인행세하라 했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신년사를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신년사를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창룡 논설주간
정창룡 논설주간

대한민국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헌법 제70조)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 5년이 지나면 대통령은 청와대를 비워야 한다. 아울러 헌법 제7조 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규정한다.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이라 하는 근거 조항이다. 최고위직 공무원인 대통령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대통령은 '청와대를 5년간 빌려 쓰는 국민의 공복'이라는 것이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

5년 세든 대통령은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 청와대를 차지했다고 대통령이 주인 노릇을 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이 정부 들어 세입자가 집 기둥을 뿌리째 뽑으려는 일들이 집권 기간 내내 이어지고 있다.

한 편의 영화가 과학을 누른 탈원전 정책이 대표적이다. 50년에 걸쳐 쌓은 원전 정책을 5년 정부가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감사원이 이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자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최재형 감사원장을 향해 "집을 잘 지키라고 했더니 아예 안방을 차지하려 든다"며 겁박하고 나선 것은 상징적이다. 주인인 대통령이 원전이란 기둥을 뽑으라 했는데 왜 주인 말에 복종하지 않느냐는 식이다.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하라 했더니 주인 행세를 한다"는 대목에 '내가 주인'이란 그릇된 인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감사원장의 임기와 책무, 그리고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은 헌법(헌법 제97조)에 명기된 것이다. 이를 헌법에 명기한 것은 '권력으로부터 독립'이라는 민주주의의 당위성 때문이다. 감사원이 공익 감사가 청구된 사안에 대해 감사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첫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정치인이 '정치를 한다'며 호도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물론 그 뿌리엔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취임사에서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라 했다. 당시는 구구절절 미사여구에 묻혀 넘어갔지만 '저의 국민'이란 말은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조어다. 루이 14세의 '짐이 곧 국가'란 말을 연상케 해서다. 민주주의 체제라면 '국민의 대통령'은 있어도 '대통령의 국민'은 있을 수 없다.

집권층의 인식이 이러니 이 정부가 '국민을 위한다'며 손댄 일 중 내세울 일이 하나도 없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나섰지만 세금으로 만든 노인 일자리만 잔뜩 늘렸다. 만성적 실직 상태 인구가 300만 명에 육박한다. 마차가 말을 끈다는 비아냥에도 밀어붙였던 소득주도성장은 온데간데없다. 최저임금을 급등시켜 청년들의 '알바'자리만 없앴다. 자영업자들의 줄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대신 나랏빚은 지난 한 해 100조원이 늘었다. 양질의 민간 일자리는 줄고 미래 세대에 부담이 될 공무원 증원은 이명박 정부의 14배, 박근혜 정부의 3배에 이른다. 24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집값은 폭등했다. 무주택자는 집을 갖지 못해 절망하고 집을 가진 자는 세금 때문에 좌절한다. 30년 남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원전 없는 탄소중립은 구두선일 뿐이다. 원전 대신 태양광을 내세웠지만 악취가 진동한다. 국가적 미래 먹거리던 원전 수출은 감감무소식이다. K방역을 입이 마르도록 되뇌었지만 이미 현재 54개국이 시작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아직 요원하다.

1년 4개월 후면 문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야 한다. 그동안 잘못 뽑은 기둥을 어떻게 되돌려 놓아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오늘은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일이다. 지난 국정 운영을 냉정히 되돌아보고 성찰의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주인 행세 하라고 국민이 청와대에 입성시킨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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