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시·군의 행정구역 명칭 변경이 활발하다. 시·군 주민들은 일제 잔재 청산과 관광 이미지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명칭 변경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도내 지명 가운데 일제 강점기 지명이 많은 만큼 이런 움직임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앞다퉈 이름 변경
18일 경북도에 따르면 2007년 이후 모두 12곳의 시·군 행정구역 명칭이 변경됐다.
2007년에는 경산시 쟁광리가 일광리로 변경되며 일제 잔재의 명칭에서 옛 지명을 되찾았다.
2010년에는 포항시 대보면이 호미곶면으로 이름을 바꾸며 전국적 해맞이 명소로 탈바꿈했다. 한반도 최동단인 대보면 위치와 형상이 호랑이 꼬리를 닮은 것에 착안했다. 당시 대보면 전 주민(1천235가구)을 대상으로 의견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977가구 중 86%인 841가구가 변경에 찬성했다.
이후 뜸했던 행정구역 명칭변경은 2015년부터 활발해졌다. 울진군은 2015년 2월 서면과 원남면을 금강송면과 매화면으로 각각 명칭을 변경했다.
서면은 읍내 서쪽에 위치한 데 따른 방위적 개념이었는데 금강송 집단 군락지가 있는 지역 특성을 반영해 금강송면이 됐다. 읍내 남쪽으로 멀리 있다는 의미의 원남면도 매화나무 단지가 많은 점에 착안해 매화면으로 명패를 바꿔 달았다.
같은 해 4월 고령군은 읍내 명칭을 고령읍에서 대가야읍으로 변경했다. 당시 고령 주민들은 1천600년 전 대가야국의 도읍지였던 역사성을 브랜드화해 지역 발전을 꾀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예천군이 나섰다. 상리면과 하리면 주민들은 일제시대 방위 개념으로 붙인 지명을 각각 효자면과 은풍면으로 변경했다.
상리면은 조선 철종 때 효자로 유명했던 도시복이 살았던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아 효자면이 됐다. 하리면은 은풍준시와 사과로 유명해 은풍면을 새 이름으로 맞았다.

2017년 안동에서는 일제가 의도적으로 왜곡한 이름을 되찾는 의미 있는 일(자품리→재품리)이 있었다.
당시 인재가 많이 태어나는 것을 우려한 일본인들이 재품(才品)리를 자품(者品)리로 바꾼 것을 원상복구했다. 일제는 재주를 뜻하는 재(才)를 사람을 상대적으로 낮게 일컫는 자(者)로 바꾼 바 있다.
2019년에는 청송군이 방위 개념이 반영된 일제의 명칭 부동면과 이전리를 각각 주왕산면과 주산지리로 변경해 눈길을 끌었다.
청송읍 동쪽에 있다는 이유로 일제 강점기 부동면이 됐던 것을 지역고유 특성을 살려 주왕산면으로 변경했다. 또 실제 마을과 연관성이 떨어졌던 배나무밭이란 뜻의 이전리는 마을 최고 명승지인 주산지를 고려, 주산지리로 바뀌었다.
2020년대 들어서도 행정구역 명칭 변경은 이어지고 있다. 2020년 1월 1일 상주시는 관광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옛 지명을 활용, 사벌면을 사벌국면으로 변경했다.
올해 1월 1일에는 군위군이 일제 잔재 명칭의 하나인 고로면을 삼국유사면으로 이름을 달리했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인각사가 고로면에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했다.
조만간 명칭 변경을 앞둔 곳도 있다. 경주시는 양북면을 문무대왕면으로 바꾸기 위해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양북면은 일제 강점기 양남면에 대응하는 이름으로 붙여졌지만 지역 특색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양북면에는 신라 삼국통일을 완성한 문무대왕의 수중릉, 그의 호국정신이 깃든 감은사지 등이 있다.
이와 관련한 조례 일부개정안 입법예고도 마쳐 2월 중 조례 개정 등을 거치면 변경 절차가 마무리된다.

◆명칭 변경 왜 잇따르나
경북 시·군의 행정구역 명칭 변경은 일제 잔재 청산의 목적도 있지만 관광 이미지 제고를 통한 지역 발전을 꾀하려는 목적이 크다.
실제 명칭 변경의 효과는 상당하다.
포항시는 대보면을 호미곶면으로 바꾸며 해마다 호미곶한반도해맞이축전을 열어 전국에서 4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모여드는 효과를 보고 있다. 명칭 변경 후 10여 년이 지나며 이제 포항사람들도 대보면 명칭을 더 낯설게 느낀다고 한다.
청송군도 주왕산면 명칭 변경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주민들은 명칭 변경 이후 주왕산과 함께 주왕산면 동네 자체가 명소가 되는 '네임 벨류 상승' 효과를 누리고 있다.
주왕산면에서 파는 사과, 고추 등 농산물도 덩달아 소비 선호도가 높아졌고, 주왕산 방문객 상당수가 주왕산면 소재지도 들러 상권이 살아나고 있다.
울진군 금강송면은 이름이 바꾼 뒤 전국 최대 금강송군락지라는 이미지를 더해 유명세를 타고 있다.
대한민국 금강송하면 금강송면과 자연스럽게 연결돼 주민 모두 명칭 변경에 만족감을 나타낸다. 매화면 주민 역시 매화나무가 많은 지역 특성을 살린 덕에 관광객이 늘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고령읍은 대가야읍이 되면서 대가야 부활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고 각종 연구·복원 사업,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등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 1일 고로면을 삼국유사면으로 바꾼 군위군 역시 '삼국유사의 고장'을 도시 브랜드로 해 관련 콘텐츠 강화 등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삼국유사를 테마로 한 복합문화공간인 삼국유사테마파크를 개장했고 삼국유사 목판 초기본도 이곳으로 이관했다. 2019년부터는 삼국유사 교감본 디지털 사업, 삼국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 등도 추진하고 있다.
양북면의 문무대왕면 명칭 변경 역시 지역 관광산업 활성화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추진 배경의 하나로 꼽힌다.
◆명칭변경 어떤 절차 거치나
지방자차단체가 행정구역 명칭을 바꾸려면 지방자치법상 해당 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고 그 결과를 시도지사에게 보고해야 한다. 즉, 주민 의견수렴 등을 통해 대상지를 선정한 뒤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조례 제·개정을 거쳐 시도지사에게 보고하는 방식이다.
변경 대상지로는 ▷주민이 열망하거나 수 차례의 진정·건의 지역 ▷어감이 좋지 않거나 혐오감을 주는 지역 ▷특별한 사유로 명칭 변경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지역이 될 수 있다.
다만 새로운 명칭이 다른 행정구역과 중복된 명칭이거나 여러 자치단체에 걸쳐 있는 유명 산·하천, 문화재 명칭 등이면 관련 자치단체와의 사전 협의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명칭 변경 과정에서 갈등이 예상되는 탓이다.
실제로 영주시가 2012년 단산면을 소백산면으로 변경 시도했으나 2016년 대법원은 "영주시가 일방적으로 소백산 명칭을 선점해 사용할 경우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의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합리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당시 소백산국립공원 면적 상당수가 있는 충북 단양군은 "소백산은 단산면의 전유물이 아니다"면서 크게 반발했다.
거센 항의에도 영주시의회는 조례를 통과시켰고 단양군의 분쟁 조정을 당시 안전행정부가 받아들이자 대법원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대법원은 4년여 심리 끝에 영주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밖에 역사적 인물 이름의 독점적 사용 등으로 국민 정서상 행정구역 명칭으로 사용하기 부적절한 경우에도 명칭 변경이 어려울 수 있다. 다른 행정구역 명칭과 중복되는 경우도 행정 혼란과 주민 불편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부적절한 행정구역 명칭으로 분류될 수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도내에는 아직도 단순히 방위를 표시한 일제 잔재 등 변경 대상이 될 명칭이 다수 있을 것"이라면서 "각 시·군이 관광 활성화에 관심이 큰 만큼 앞으로도 명칭 변경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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