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희수의 술과 인문학] 추운 겨울을 녹이는 따뜻한 술

뱅쇼
뱅쇼

사랑하는 사람보다 좋은 친구가 더 필요할 때가 있듯이, 차가운 겨울바람이 옷 속까지 스며들며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추운 겨울을 녹이는 데는 따뜻한 술 한 잔이 제격이다. 술도 은근히 계절을 탄다. 뜨거운 여름날이면 등골까지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이 제격인 것처럼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따끈하게 데운 정종이나 은은한 온기가 느껴지는 약간의 알코올을 가미한 커피나 차와 함께 마시거나 살짝 데워 마시는 방법까지 겨울을 나기 위한 다양한 음주법이 있다.

술은 계절을 타고 계층을 탄다. 소주나 와인, 양주가 각각 서민과 문화적 중산층, 부유층을 대변한다면 맥주나 사케는 각 계절의 흥취를 담아내는 데 안성맞춤이다. 술은 차게 해서 마셔야만 제맛이지만 추운 겨울날 따뜻한 술은 지친 마음 까지 녹이는 매력이 있으며,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주고 뭉친 근육을 이완시켜주며 몸에 온기가 느껴져 추위를 달랠 수 있다. 하얀 눈이 펄펄 내리는 추운 겨울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따뜻한 칵테일을 마시면 포근하고 따끈한 정겨움을 나눌 수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집콕 하며 늦은 밤 간단하게 음주를 즐기고 싶을 때 따뜻한 글뤼바인(Gluhwein)을 마셔보자. 글뤼바인은 레드와인에 레몬, 계피, 정향 등을 넣고 20~30분 정도 뜨겁게 데워 마시는 독일식 음료로 감기 예방과 원기 회복에 좋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에서는 '뱅쇼(Vin chaud)', 미국에서는 '멀드 와인(Mulled Wine)'이라 부르며, 겨울철 야외활동(캠핑, 등산, 스키, 골프 등)을 할 때 매서운 한파에 꽁꽁 언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힐링 와인이라 할 수 있다.

날씨가 쌀쌀할 때 따끈한 정종 한 잔이 생각난다. 한국에서 정종이라 불리는 술은 쌀, 누룩, 물로 빚어 발효시킨 맑은 술이라는 의미의 '청주(淸酒)'를 말하며, 사케는 니혼슈(日本酒)라고도 하며, 쌀로 빚은 일본식 청주를 말한다. 사케는 우리나라의 청주와 맛에 차이가 있는데, 이는 주원료인 쌀과 누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술을 만들기 위한 쌀을 별도로 재배한다.

또, 밀로 누룩을 만드는 우리 술과 달리 쌀로 누룩을 만든다는 점이 다르다. 보통은 준마이슈, 혼죠조슈를 데워 마시기 좋은 사케로 꼽으며, 사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끓이거나 데울 때 적정 온도는 40~55℃ 중탕이 적당하다. 복어 지느러미를 굽거나 태워서 따끈한 사케에 넣어 내놓는 히레사케에 복어 향이 잘 배어들게 70℃ 정도로 뜨겁게 데워 마신다.

겨울철에 주당들이 술로 추위를 녹이기 위해 즐겨 마시는 따뜻한 칵테일로는 위스키, 브랜디, 럼 등의 기본 주에 뜨거운 커피, 우유, 꿀, 코코아, 레몬, 계피, 물 등을 섞어 마시는 핫 토디(Hot Toddy), 럼에다 따뜻하게 데운 애플주스, 시나몬, 버터 1조각을 섞어 마시는 핫 버터 럼(Hot Butter Rum), 아이리시 글라스에 각설탕, 위스키를 넣고 뜨거운 커피로 잔을 채워 저어준 후 휘핑크림을 띄워 마시는 아이리시 커피(Irish Coffee), 브랜디 글라스에 B&B와 그랑마니아를 넣고 불을 붙여 살짝 데워 마시는 스키 롯지(Ski Lodge) 등이 있다.

겨울 별미로 전통주를 살짝 데워 마시는 것도 좋다. 술을 데워 마실 때는 대략 40~45도 정도로 체온보다 높은 온도로 따끈한 느낌이 들게 중탕을 해서 마시는 것이 적당하다. 집에서 혼자 편안하게 즐기는 가벼운 혼술은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자신과의 관계를 다지기 위함이며, 소량의 음주와 기분 좋게 마시는 술은 보약이다. 마음의 휴식이 필요한 날 삶의 속도를 늦추고,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술 한 잔으로 지친 하루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려보자.

글 : 이희수 대한칵테일조주협회 회장(대구한의대 글로벌관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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