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거꾸로읽는스포츠] 축구 스타 대표이사 이영표(강원FC)는 조광래(대구FC) 뛰어넘을까

조광래 대표이사, 제자 감독 발판 삼아 성공가도…이영표 대표이사, 선배 최용수를 감독 영입해 주목

이영표(왼쪽) 강원FC 대표이사가 지난달 18일 강원도청에서 기자회견 중 최용수 신임 감독 목에 머플러를 걸어주고 있다. 연합뉴스
이영표(왼쪽) 강원FC 대표이사가 지난달 18일 강원도청에서 기자회견 중 최용수 신임 감독 목에 머플러를 걸어주고 있다. 연합뉴스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명 감독이 될 수 없다'는 말은 맞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다. 국내 프로 스포츠가 40년 역사를 자랑하면서 이제 스타플레이어 출신들이 '명 대표이사'에 도전하고 있다. 축구와 야구 등 프로 스포츠에서 경기인 출신 단장이 늘어나고 구단을 대표하는 사장까지 나오고 있다. 프로야구에서는 주로 단장을 맡고 있으나 프로축구에서는 구단 운영을 책임지는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성공 신화를 연출하고 있는 대구FC 조광래 대표이사에게 강원FC 이영표 대표이사가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시민구단의 스타 모시기 경쟁으로 볼 수도 있다.

이 대표이사는 조 대표이사의 행보와 비교하면 같은 맥락이지만 결을 달리하고 있다. 팀 재건을 위한 방향 설정을 놓고 조 대표이사는 자신이 감독 시절 선수로 둔 제자들을 사령탑으로 영입해 전권을 휘두르지만, 이 대표이사는 선배인 최용수 감독을 영입해 대조적이다.

두 대표이사는 부임 후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감독을 교체했다. 여기까지는 똑같다. 2014년 9월 취임한 조 대표이사는 그해 11월 시즌이 끝나자마자 최덕주 감독을 해임했다. 임기가 1년 더 남은 최 감독에게 잔여 연봉을 모두 지급하는 조건으로 합의 사퇴하는 형태였으나 살림살이가 열악한 시민구단에 부담이 되는 가혹한 조치였다. 이후 조 대표이사는 친정 체제로 이영진, 손현준, 안드레 감독과 함께 했으며 현재 이병근 감독을 지휘하고 있다.

조 대표이사가 능력을 인정받으며 8년째 장수하고 있다. 그는 부임 후 2부 리그의 대구FC를 1부리그로 승격시키고 2018년 FA컵에서 구단 사상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등 성과를 냈다.

하지만 그의 재임 기간 대구FC 감독들이 문제 해결의 실탄으로 희생한 점은 곱씹어볼 일이다. 이영진 감독은 2016년 시즌 중 1부리그 승격에 대한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사퇴했다. 이 감독 뒤를 이은 손현준 감독은 2016년 대행 시절 1부 승격을 일궈내면서 정식 감독이 됐으나 1년을 버티지 못하고 2017년 5월 시즌 중 사퇴했다. K리그 최초의 외국인 선수 출신 사령탑인 안드레 감독도 대행을 거쳐 능력을 발휘했으나 2020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재계약하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시즌을 이끄는 이병근 감독까지 감독 3명이 연달아 대행을 거쳤다는 점은 조 대표이사의 친정 체제 구축이 험난했음을 반영하고 있다.

이를 두고 조 대표이사가 살아남는 방편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지휘하기 편한 감독을 영입하면 성적 부진으로 책임져야 할 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평생 축구인으로 자신의 색깔에 맞는 경기력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실제로 조 대표이사는 부임 초기부터 신인 발굴에는 직접 나서고 있다. 그는 어린 선수를 보는 눈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트레이드와 이적 시장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는다.

2014년 9월 취임한 대구FC 조광래 대표이사는 팀을 1부리그 강호로 이끌고 전용구장과 클럽하우스를 마련하는 등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대구FC 제공
2014년 9월 취임한 대구FC 조광래 대표이사는 팀을 1부리그 강호로 이끌고 전용구장과 클럽하우스를 마련하는 등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대구FC 제공

시민구단의 경제 사정을 고려한 구단 운영도 조 대표이사의 치적이다. 골을 터뜨리는 핵심인 공격진을 브라질 용병으로 구성해 집중 투자를 하는 대신에 국내 선수들은 발굴에 중점을 두는 방식이다. 엔트리 18명에 포함돼 경기에 나서는 젊은 선수들이 꾸준히 등장하면서 '조광래의 화수분 축구'가 빛나고 있다.

조 대표이사의 이런 행보는 이영표 대표이사에겐 모범 사례다. 이 대표이사는 먼저 출발한 축구계 선배 조 대표이사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축구뿐만 아니라 방송 해설과 예능, 개인사업에도 기량을 발휘한 이 대표이사가 많지 않은 40대 나이에 험난한 시민구단 경영을 맡아 시련을 겪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올해 취임한 이 대표이사는 첫해부터 성적 부진으로 김병수 감독을 경질하고 최용수 감독을 영입하는 등 조 대표이사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차이점은 김병수, 최용수 등 축구계 선배를 감독으로 뒀다는 것이다. 이 대표이사가 최 감독과 공존하려면 이미 김 감독 경질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선수 기용과 작전 등 감독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조 대표이사가 감독 권한 침해로 비난받았던 점을 이 대표이사는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전용구장 건립과 2군 운영에서도 이 대표이사는 조 대표이사가 일군 업적을 따라가고 있다. 이 대표이사는 지난 2월 강원FC B팀을 신설해 K4 리그에 참가시키고 전용구장 건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조 대표이사는 2군 운영과 전용구장 DGB대구은행파크 건립으로 주목받았다.

강원FC는 지난 4일 성남FC전을 끝으로 올 시즌을 마무리했다. K리그1에서 11위를 차지, K리그2의 대전하나시티즌과 잔류와 강등을 놓고 '승강 플레이오프'를 갖는다. 오는 8일에는 대전에서 원정 1차전을, 12일에는 홈인 강릉에서 2차전을 치른다. 이 경기 결과는 이 대표이사의 앞으로 행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 대표이사는 지난달 8일 강원도의회 사회문화위원회 행정사무 감사에 출석해 그간의 논란, 성적 부진 등을 설명했지만 도의원들에게 강하게 질타받았다. 당시 그는 "염치불구하고 예산을 더 달라"고 부탁했다.

이 대표이사는 최 감독과 함께 K리그 최정상에 오르겠다는 높은 꿈을 꾸고 있다. 구단주인 강원도지사의 절대적인 신임, 지방의회와 도민의 지지, 축구 팬 성원, 인프라 구축 등이 뒷받침돼야만 가능한 일이다. 순탄해 보이지 않지만, 축구공은 둥글고 불가능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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