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취임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취임 초기 지지율이 70%대로 높았으나 최근 30%대로 폭락했다. 집권 4개월 만에 나타난 역대 최악의 지지율 하락이다. 여론을 무시하고 소통에 부족한 것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는 상황에서 여행을 장려해 소비를 일으키자는 '고 투 트래블'(Go to travel) 정책을 멈춰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으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행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일본의 코로나19 하루 확진자 수는 수천명대로 걷잡을수 없이 늘었고 일본 정부는 뒤늦게 이 정책을 일시 중단했다.
스가 총리는 또 지난 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성의없이 임해 비판받는 등 소통에서도 미흡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미리 준비한 회견문을 읽고 취재 기자와의 질의응답까지 마치는 데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체적인 내용도 총리 취임 이후 반복해서 밝힌 것을 그대로 되풀이한 수준이었다. 기자와의 질의 때는 동문서답식으로 답변하거나,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답변 원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스가 총리는 전임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성실하고 충직한 관방장관이었다. 정치 명문가 출신이 아닌 인물로 서민적 풍모를 지녀 취임 직후에 인기를 얻었으나 곧 그의 정치적 자질이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그가 무리하게 '고 투 트래블' 정책을 강행한 데에서 융통성없고 고집스런 면모를 보였으며 말 실수를 할까 두려워 지나치게 신중한 언행을 하다가 '소통 부족'이라는 평가가 굳어졌다.
스가 총리는 의회 연설이나 언론 접촉에서 미리 준비한 말만 하는 경우가 많고 애매모호한 답변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현안을 설명하면서 틀리게 말하는 등 말 실수도 잦다. 이때문에 국정 현안을 제대로 장악하고 자신감있게 이끄는 리더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스가 정권의 운명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가졌다. 디지털 시대와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온-오프라인 형식으로 새롭게 시도됐고 국정 현안에 대한 여러 질문에 비교적 진솔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 답변은 충분치 않았고 '아동 학대' 대책 질문에 대해서는 진의가 왜곡될 수 있는 답변을 해 괜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래도 과거처럼 기자들에게 사전에 질문 내용을 파악하지 않고 기자회견에 임함으로써 국정 현안에 충분히 대처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했다.
그런 면에서 앵무새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스가 총리보다는 낫지만, 문 대통령은 스가 총리처럼 '소통 부족'이라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 기자회견에서도 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소통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럼에도 현장 방문을 통해 작은 그룹의 국민과 양방향의 대화를 주고받는 경우는 많이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소통을 더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필자에게는 그 답변이 하나의 변명처럼 들렸다. 현장 방문에서 국민과 소통하고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현안들에 대해 의견을 말하지만 이는 주로 대통령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위주로 나오게 마련이다. 국민은 대통령이 뜨거운 현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한데 여기에는 미디어와의 질의응답 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이 가장 효과적인 소통 통로가 막혀있고 회수가 절대 부족하다. 1년에 한, 두 번 하는 기자회견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문 대통령도 그 점을 알기에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는 말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생각과 윤 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에 대한 입장도 전했다. 하나는 오래된 사안이고 하나는 최근의 사안이지만, 국민은 한동안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왜 대통령으로서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지 의아해 했다. 대통령은 한참 지나서야 뒤늦게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답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부동산 가격 폭등과 코로나19 백신 도입 지연 등의 문제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데 소통이 부족한 것도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되진 않았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기자회견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한 것만 봐도 소통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로 언론 접촉을 자주 함으로써 말이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되거나 역풍이 빚어지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 같다. 언론 환경을 적대적이라고 여겨 접촉을 줄이는 건 아닌가 하고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이 나서기보다는 총리와 장관들이나 청와대 참모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주고 이들이 신문·방송 매체와 접촉해 정책이나 현안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는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미디어 소통은 너무나 부족하다.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자신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총리와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가 나설 때도 있지만,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이 발생할 때 대통령이 나서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비판을 받아들이기도 해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지도자상이란 때로는 논란이나 논쟁의 한가운데에 뛰어들어가 사안을 정리하고 자신감있게 이끄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 비판자들은 대통령이 참모들에 둘러싸여 얹혀간다는 매서운 비난을 가하기도 한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기자회견 이후 대통령의 소통 문제와 관련해 페이스북을 통해 "사전에 예정된 질문을 주고받던 기자회견과 문재인 정부의 기자회견 횟수를 단순 비교해 봐야 부끄러움은 이전 정부의 몫일 것"이라고 말했다. 탁 비서관은 또 "문 대통령의 현장 방문은 단순히 박제화된 현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이전 정부의 것들과 비교할 때 질적으로 다르며 현장 방문도 요식화된 행위가 아님을 강조했다.
탁 비서관의 말에 수긍할 수 있지만, 문재인 정부가 민주적 가치와 제도를 중시하는 '촛불 정부'를 지향한다면 이전 정부들하고 비교해 나아졌다고 하는 데서 그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상도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일 뿐만 아니라 정치 지도자이기도 한 대통령은 말해야 할 때 말하는 정치 행위를 적극적으로 펼쳐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성품이나 스타일에 따라 국정 운영방식이 나타날 수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국민과의 소통, 언론 매체와의 소통, 여야 지도자와의 소통 등이 자주 이뤄져 야 하며 이것이 하나의 절대적 기준으로 자리잡게 할 필요가 있다.
기자회견은 대통령에게도 부담되는 일이지만, 이런 부담이 기본적이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지금의 상황에서 회수를 당장 많이 늘리기가 어렵다면 분기에 한 번씩 기자회견을 하면 어떠한가. 이것이 정착된다면 나중에는 궁극적으로 매월 최소 1회 이상의 기자회견을 하면 좋겠다. 정식 기자회견이 아니더라도 수시로 언론과 마주하고 접촉하는 상황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솔직하게 말하거나 때로는 핵심을 피하는 답변이라도 함으로써 해당 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과 태도를 감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가 앞으로 미디어와의 소통을 더 늘리도록 노력하겠다 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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