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가오싱젠 글/ 오수경 옮김/ 민음사/ 2002)

즐거운 기다림이었다. 드디어 첫눈이 내렸다. 길거리에 눈발이 흩날린다. 앙상한 가로수에 눈송이가 맺혔다. 가게 앞 버스정류장 부스 안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눈을 터는 사람, 버스가 오는 쪽을 보며 발을 동동거리는 사람, 휴대전화기를 보는 사람···.
"아지매, 황금동 가는 버스 여 서는 거 맞능교?"
버스정류장에서 우왕좌왕하던 할머니가 초조한 눈빛으로 물었다. 할머니는 원하는 답을 못 듣자 상심한 얼굴로 버스정류장에서 서성인다.
저자 가오싱젠은 중국 강서성 간저우에서 출생하였다. 1979년부터 소설과 평론을 발표하였고, 1981년부터는 베이징인민예술극원 소속 극작가로 희곡 '비상경보', '버스 정류장', '야인' 등을 발표했다. 그의 희곡 작품은 중국 고대 연극의 표현 양식인 제의적 탈놀이, 민간의 설창, 만담과 겨루기, 인형극, 그림자 인형극, 마술과 잡기를 기초한 새로운 현대극을 창출하였다는 평이 있다. 2000년 소설 '영혼의 산'으로 중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버스 정류장'은 세 편의 희곡으로 구성됐다. '버스 정류장'을 읽는데 사무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떠올랐다. 두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리고, 버스를 기다린다. 지루하고 고통스런 기다림의 나날이다. '독백'은 남자 배우 한 사람이 무대에 등장해 연기를 펼친다. 이 작품은 배우 자신과 역할과 극 중 인물의 관계를 모색하고 표현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 '야인'은 3장으로 되었는데, 각 장을 전통의 노래, 무술, 동작으로 표현해 중국 전통극의 연극 개념을 회복하고자 했다.
안경잡이: 여러분 못 들었어요? 그 사람은 이미 시내로 갔어요. 우린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어요. 아무 소용없이 뭔가 기다리는 고통···.
노인: 그 말이 맞아. 난 한평생을 기다렸어.
아이엄마: 길 떠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으면.
아가씨: 나도 너무 피곤해요. 모습도 아주 초췌하겠지.(42~43쪽)
끝이 없는 기다림에 본능이 드러난다. 치고받고 싸우고 절망하고 위로한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혼자 기다리지 않는 게.
생태학자: (중략) 사람과 새는 친구야, 알겠니?
세모: 알았어요.
생태학자: 사람과 나무도 역시 친구란다. 숲이 있는 곳이라야 사람도 편안하게 살 수 있거든.
세모: 사람과 야인은요?
생태학자: 물론 친구지.(191쪽)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부조화를 극복하는 길은 순수한 우정에 있으리라. 사람은 자연의 일부인 터, 자연과 인간 사이의 부조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코로나19가 사라지길 기다리고 있는가? '버스 정류장'을 읽으며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대, 책 속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찾아보시길.
최지혜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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