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너무 짧은 인생을 살다 가신 아버지. 아버지는 누구보다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7남매 중 차남입니다. 카투사 생활을 하신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영특한 두뇌와 할머니의 인자한 성격을 닮아 형제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분이셨습니다.
신혼 시절 아버지는 정말 검소하게 인생을 사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용돈으로 천 원을 주시면 몇 달을 쓰지도 않고 지폐가 닳도록 주머니에 넣어두고 다니셨습니다. 아버지의 검소함과 어머니의 꼼꼼함으로 남들보다 아주 빠른 시기에 대구에 있는 아파트를 장만하셨습니다. 아버지 봉급이 특별할 정도로 많지 않았지만 두 분의 검소함이 만들어 낸 성과였습니다.
그렇게 승승장구만 해오던 아버지의 삶에 어려움이 닥치기도 했습니다. 경남 창녕의 부곡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많은 돈을 빌려주고 보증까지 잘못 서서 힘든 시절을 보냈습니다. 10년 남짓의 부곡 생활을 마치고, 대구 이사 후 아버지는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모 협동조합의 상무로 이직했습니다.
이후 아버지는 회사 생활을 그만두시고 원하시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회사 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더 늦기 전에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아버지 의지를 꺾을 순 없었습니다.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이는 가정의 불화로 이어지며 가족들 또한 아픔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정화조 관련 상품으로 특허를 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이어가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워낙 베푸는 걸 좋아하셔서 사람들이 모이긴 했지만, 중요한 시기마다 믿었던 사람들이 배신해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성격이 사업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좋아하셨던 술을 더 가까이하셨고 건강까지 조금씩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아버지는 첫 손주인 제 딸을 아주 예뻐해 주셨습니다. 딸과 함께 아버지를 뵈러 가는 날이면 몇 시간 전부터 언제오냐며 어머니께 몇 번이고 되물으며 기다리곤 하셨습니다. 딸아이는 아직도 아버지께서 사주셨던 선물을 기억하며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아이를 보며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아버지 건강은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사업실패로 인한 스트레스와 술로 이미 여러 지병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가슴이 답답하다는 아버지께서는 정밀검사 결과, 췌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와 우리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6개월 남짓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가족들은 일말의 희망을 품고 큰 병원을 오가며 이겨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기적은 찾아오지 않았고, 3개월 만에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친구와 노는 것보다 아버지의 퇴근시간이 더 기다려졌던 어린 시절, 두 손 가득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오시던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아버지가 생각날 때면 딸을 위해 아버지 흉내를 내보곤 합니다.
저 역시 한 아이의 아버지로 생업을 이어가야 함에 지쳐버릴 때가 있습니다. 추억 속 아버지를 닮아가는 저를 볼때면 그리움으로 가슴 한 곳이 시려 눈가가 젖어들곤 합니다.
경상도 아버지라 남에게는 관대하고 가족에게는 무심하여 때론 섭섭할때도 많았지만 그보다 더 큰 사랑을 주셨던 아버지. 술도 좋아하셨고 노래도 잘 부르시던 아버지. 딱 하루만이라도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밤을 지새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너무 그립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슬픔에 취해 잠이 든 제 꿈에 나와 아무말 없이 웃어주던 모습. 아마도 우리 가족에게 멀리서나마 힘이 되어주고 계신거 같습니다. 덕분에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차디찬 겨울이 짙어지는 요즘, 누구보다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의 품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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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전화: 053-251-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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