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
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
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
17번째 이야기. 안동 고택(古宅) 스테이

설날이 다가오면 우리는 늘 설렜다.
설날에는 어른들로부터 세뱃돈을 받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한동안 만나지 못한 사촌들을 만나 같이 놀 수 있었다. 보릿고개를 갓 넘긴 가난했던 시절, 평소 먹지 못하던 푸짐한 명절음식들도 우리들의 입을 궁금하게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시골 큰집은 전형적인 옛날 한옥이라 방바닥은 따뜻했지만 추웠다. 화장실은 또 바같에 있어 불편하기도 했다. 편안한 집을 떠나 그런 옛날 집에서 하룻밤 자야한다는 것은 어린 시절에는 고역이었다.
한옥의 하룻밤은 그렇게 불편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도심 속 편안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한옥 중에서도 특별한 '고택스테이'는 요즘 남다르게 다가온다. 호텔이나 고급 펜션을 숙소로 하는 편안한 여행도 좋지만 안동이나 경주 같은 역사문화도시를 찾아나서는 여행이라면 '고택스테이'를 권하고 싶다.
특히나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를 자처하는 안동의 수백 년 이상된 유서깊은 고택에서의 하룻밤은 더 특별할 것이다.
안동에서도 제대로 된 고택에서 하룻밤을 자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안동에는 도처에 고택들이 즐비하다. 마음만 먹으면 고택에서 아예 살 수도 있지만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러나 안동에는 고택을 빌어 책방을 낸 '가일서가'도 있는 등 고택은 '박제된' 문화재가 아닌 우리 생활의 일부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고택스테이'가 문득 남다르게 다가와서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조선 중기 이현보의 농암종택이나 묵계종택, 혹은 학봉종택, 오류헌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당대의 학자와 가문의 종택에서 하룻밤 묵는 것은 어떨까. 길 가던 나그네가 해질녁 낯선 고택의 대문에서 '이리 오너라!' 라며 공손하게 주인장을 부르면, 마치 기다리던 손님이 찾아온 듯 기꺼이 방 한 칸 내어주면서 종가의 기풍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분으로 말이다. 안동의 여염집에서는 길 잃은 나그네를 소홀히 대접하지 않았다.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따뜻하게 대하고 곤궁한 이웃을 구휼하는 것은 세상을 대하는 선비들의 마음이었고 누구나 공유하는 생활철학이자 미덕이었을 것이다.

안동 고택 중에서 어디가 좋을까 고르다가 '오류헌'으로 정했다. 이현보의 '농암종택'과 호사스런 '구름에 리조트' 등에 이르기까지 안동에는 이름난 '고택스테이'가 많이 있지만 '하루에 딱 한 팀만 예약을 받아, 고즈넉하게 고택의 정취를 온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오류헌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오류헌'은 안동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임하면에 있다. 시내에서 차를 타고 20여분 독립운동의 얼이 서린 '내앞 마을'과 '경북독립기념관'을 지나 임하댐 쪽으로 가다가 만나게 되는 첫 번째 다리를 건너가면 눈에 들어오는 마을이다.
임하댐에 가로막혔던 '반변천'이 내앞 마을에 도달하기 전에 먼저 만나는 마을이 오류헌이 있는 '임하리'다. 오류헌은 원래 임하댐이 조성되면서 수몰된 임동면 지례리에 있었다. 1990년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본채와 주요 건물을 지금의 임하면으로 어렵사리 이건한 것이다.
오류헌은 마을의 제일 안쪽 산자락에 있었다. 대문에는 큼지막하게 '五柳軒'이라는 현판이 적혀있어서 호기롭게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마당이 넓었다. 문득 김원일의 소설 '마당 깊은 집'의 무대인 대구 반월당의 그 깊은 마당이 생각났다. 마당에 들어서서 눈앞에 바로 보이는 한옥이 사랑채다.
시골 큰 집에 모처럼 놀러온 듯 편안했다.
오류헌은 국가민속문화재 제 184호로 지정돼 있는데다, 지난 해 한국관광공사로부터도 고택스테이 품질 인증을 받은 인증서가 입구에 걸려있었다.
오류헌은 조선 숙종 때 대사성을 지낸 지촌 김방걸(金邦杰)의 셋째 아들 증좌승지 목와(木窩) 김원중(김원중(金遠重)이 1678년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그래서 '목와고택'이라고도 부르는데 본채에 대청에 '木窩古宅'이라는 현판이 붙어있기도 했다.
오류헌은 무엇보다 본채와 별채 등의 생활공간을 담장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 독특했다. 김원중의 14대손인 주인장 김상돈 선생은 본채와 사랑채 및 별채 구조에 대해 문화해설사를 자청, 상세하게 설명에 나선다. "문살과 마루는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주고 있으며 이런 섬세한 문살은 다른 고택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며 오류헌을 지키는 종손으로서의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사랑채는 1920년에 새로 지은 100년이 된 한옥인데도 350년이 지난 본채와도 잘 어울렸다.
'오류헌'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을 본떠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었던 김정환(金廷煥)의 호를 따서 지었다.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 눈 내린 마당과 하늘을 천천히 올려다보면서 주인장이 내주는 차 한 잔을 함께 했다. 고택스테이는 보이차 한 잔으로부터 시작했다.
오늘 머물게 된 숙소는 별채인 '영모재'(永慕齊)다. 별채는 본채 및 사랑채와 별도로 담장이 둘러쳐진 구조여서 독립적이어서 아늑하고 좋았다. 완벽하게 분리된 독립 공간이었다. 방안에는 정갈하게 개켜진 목화솜이불 몇 채와 가지런하게 정돈된 가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따뜻하게 데워진 방안에 들어서자 오후에는 그냥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뒹굴뒹굴하는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방바닥은 장작불로 데워졌다. 아파트 온돌에서는 느낄 수 없는 느낌이었다. 그냥 드러누워서 '늘 욱신거리는 오십견이 있는 어깨와 허리'를 지지고 싶었다.
창살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은 세상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오류헌 만의 선물이었다.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느릿느릿 고택에서의 하루를 보내라는 신호 같았다.
눈발은 그치지 않고 본채 안 마당 장독대위로 흩날렸다. 장독대를 하얗게 덮은 눈이 장독대를 가지런하게 정리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운 좋게도 '눈 내리는' 고택의 하루를 만들어 준 겨울하늘에 감사드려야겠다.

오후 늦게서야 눈이 그쳤다. 어디선가 새들이 날아와 짹짹 거렸고 툇마루에는 고양이 한 무리가 올라앉아 재롱을 부렸다. 길고양이들이 집안으로 들어오면 양껏 먹을 양식을 챙겨주는 주인장의 인심이 길고양이 무리들을 제집처럼 만들었나보다. 모두 길고양이들이었다. 주인장은 '순후(淳厚)가풍'이라고 설명했다. 누구에게든 인심을 후하게 베풀어온 것이 오랜 가풍이었다는 것이다.
고택에 살면서 지키는 것은 오래된 박제된 집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오류헌의 지혜와 함께 나누는 삶의 철학이라는 것을 배웠다.
화장실은 별채에 딸려있지 않고 밖에 있었다. 전통한옥 구조에서 원래 화장실은 집안에 두지 않는다. 그래서 별도로 공간을 만들어 짓거나 따로 두기 때문에 '뒷간'이라고 한 것이다. 화장실과 세면실은 따로 있었지만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잘 꾸며놓아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고 춥지도 않았다.

고택의 밤은 무서울 수도 있다. 창호지로 흘러들어오는 교교하게 비치는 별빛과 달빛이 고층아파트에서 느끼는 그것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밤늦게 들려오는 산 속 축사를 지키는 사나운 개들의 컹컹거리는 소리는 늑대소리처럼 사납고 산골짜기를 스쳐 지나는 서걱거리는 바람, 삐걱거리는 대문소리는 잠을 이루지 못할 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심 어디에서 그런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주인장이 챙겨준 단아한 안주에 안동소주 몇 잔으로 달콤한 밤을 보냈다면 그것보다 더 멋진 고택의 저녁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고택스테이가 다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팀들이 함께 머무는 다른 고택이라면 때로는 사람들로 인해 방해를 받을 수도 있다.

'짹짹거리는' 새 소리에 아침잠을 깬 적이 있는가. 요즘 같은 겨울에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부지런한 새 소리에 새벽잠을 깨기 일쑤다. 그러나 여기선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단다. 정해진 아침 시간은 없다. 그러나 별다른 숙취랄 것도 없는데 안주인은 해장에 좋은 녹두닭죽 한 그릇에 정갈한 반찬을 가지런히 담아 아침밥상으로 내놓는다. 안주인의 정성이 한껏 드러나는 아침밥상이었다.

고택스테이를 고집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고급 호텔에서 느껴보지 못한 고택이 주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언제든 다시 찾아가게 되는 것이 고택의 맛일 것이다. '고택스테이'는 오래된 집이 주는 편안함이 아니라 그 고택을 지키는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면서 역사를 생각하는 하루였다.
오류헌 고택스테이 예약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할 수 있다. 하루에 한 팀밖에 받지 않아, 한 가족이든 한 팀이든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별채든, 사랑채든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주인장의 인심은 덤이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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