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시작됩니다. 연연이 돌아오는 해이지만 유달리 올해는 부모님이 더욱 그립습니다. 며칠 전 어머님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생전에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생각하며 지으신 "思夫歌(사부가)"를 발견해, 뒤늦게나마 읽어보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평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우리 자식들에게는 내색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자식들은 철이 없어서 그런지, 마음에 없어선지 저희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버지를 향한 기다림으로 고통이 심하였을 것입니다. 기다리는 마음을 일평생 간직하시다가 2017년 8월 6일 한 많은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이승에서 못 느낀 부부의 정을 저승에서 백년해로하시기를 바랍니다.
저의 아버지 김구석은 1918년 경주시 내남면 화곡리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인 젊은 나이에 마을의 이장직을 맡아 마을 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하셨다. 당시 일제 착취가 심하던 시기라 어려움이 많았지만, 일제와 싸우면서 주민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셨습니다. 해방 후 정치적 격동기에 청년단 조직에 참여하여 좌익세력에 희생당하는 면민들의 보호에 앞장서셨습니다. 그 공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 후 밤낮으로 침범하는 좌익세력의 위협을 견딜 수 없어 1947년 맏아들인 저 영익의 출생을 곁에서 보지 못하고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家率(가솔)들을 남겨두고 일본으로 건너가셨다. 안전할 줄 알았던 일본에서도 좌익세력들이 도피차 밀입국하여 이곳에서도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만 했다.
이후 재일대한민국거류민단 조직과 결성에 참여해 교포들의 법적 지위 향상과 인권 보호에 헌신하셨다. 특히 조총련을 설득하여 민단으로 전향하도록 노력하셨다. 한일국교 정상화 후인 1966년 일본으로 건너간 후 처음으로 귀국하게 됐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새마을운동을 후원하기 위해 교민들을 설득하여 조국발전기금을 모아 고국으로 송금하셨다. 고국방문단을 결성하여 조국의 발전상을 알리는 데도 앞장섰으며 한식과 추석 등 명절에는 성묘단을 인솔해 조국을 방문했다.

비록 몸은 일본에서 생활해야 하는 형편이지만 고향에 있는 처자식을 위해 정기적으로 생활비를 보내 집과 전답을 매입하고 자식 뒷바라지에도 헌신적이셨다. 인고의 세월을 보낸 후 2003년 3월 4일 일본에서 돌아가셨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여자의 몸으로 한평생을 수절하시다가 아버지를 대신해 한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 저희 남매의 교육과 가문을 위해서 억척스럽게 사셨다.
◆어머니의 유품에서 발견한 思夫歌(사부가)
유세차 계미 이월 초 이일은 나의 부군이 작고하신 날이라 저 월성 최해순은 이별의 아픔을 한 줄의 글로 삼가 표하나이다. 병세가 위중해서 입원한다는 전화 통지를 받고 의학, 의술이 발달한 일본에서 쉽게 완치될 줄 바랬는데, 귀신도 무심하고 조물주도 시기했던가,
영결종천이 웬 말인고, 어제 유골이 도착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 분성지통 그지없다. 일생 일사 인지 상사라 사람마다 겪는 것이지만 슬프다, 우리 인생. 영익이 남매 내외, 애절 통곡 슬피 우니 자식 도리 바르게 못하고 보니 죄송하여 무엇이라 기록할까, 전일 입원 연락받고 우리 모자 급히 날아가서 약 한 첩 시탕 못 하고 영원히 떠나시는 분신도 얼마나 기다리고 바랬겠소.

사람도리 모르는바 아니 오나, 사정이 이러하니 무엇으로 변명 하리요. 애통하고 슬프도다. 삼십 전에 이별하여 만리타국 갈라앉아 고생 고통 다가와도 좋은 세월 다시 오면 우리 부부 한 가정에 동고동락 서로서로 의논하고 남과 같이 살아볼까. 영년 춘추 바랬더니 내 운이 불운하여 모든 소망 허사로다. (중략) 한평생을 객지에서 고생 많이 하다가 저세상에 가시니 그리던 부모 형제 상봉하여 만단설화 하신 후에 부디 왕생극락하옵소서.
유명은 다르지만, 정분조차 변하리까. 주야 걱정 우리 영익이와 둘째 영정이 형편 펴라고 도와주고 보살펴 주옵소서. 불우한 이내 몸은 믿을 곳이 바이없고 뜬구름처럼 바람처럼 살다 가렵니다. 이내 소회 다하자면 태산도 부족이요, 하해도 부족이나 대강 이만 줄이오니 흠향이나 하옵소서. 오호 통재, 애고 상향.
2003년 4월 6일
어머님의 思夫歌(사부가)를 눈물로 읽으며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다. 아버지를 대신해 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식들에게는 내색조차 않으시며 그리움도 사치인 양 억척스럽게 사신 어머니. 어머님 아버님, 이제는 이승에서 못다 한 부부의 정을 다하기를 두 손 모아 바랩니다. 아버지, 어머니 잘 계시지요. 불효자식 영익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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