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코로나 시대 위기의 청년세대] 경력·어학·자격증…이력서 꽉꽉 채워도, 결국엔 '불합격'

대구경북 청년들 취업 분투기
"작년 하반기 27곳 탈락, 내가 부족한 탓 같아…" 3년차 취준생 한탄
신입생도 취업난에 '덜덜'. 교대·한의대 목표로 반수
대학생 75% "취업 악화", 일각선 "코로나 탓 말고 정확한 원인 분석을"

겨울방학 중인 26일 경북대학교 도서관을 찾은 학생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겨울방학 중인 26일 경북대학교 도서관을 찾은 학생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장기 경기 침체에 코로나19까지 닥쳤던 지난해 취업 시장은 그야말로 한파와 같았다. 더 좁아진 취업문을 어떻게든 뚫으려는 청년들의 고군분투가 이어졌다. 이들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돋보이고자 작은 스펙 하나 쌓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취업 대신 창업으로 눈을 돌렸지만, 불황으로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지역 청년들의 취업 분투기와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 월급에는 희망이 없다며 자산 투자에 혈안이 된 자화상, 다시 지역으로 청년들을 끌어들일 방안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고스펙' 강박 갖는 취준생

고등학교 시절 대구에서 열심히 공부해 서울 명문 사립대의 비상경 계열에 진학한 박모(28) 씨. 졸업을 미루고 고향에 머물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3년 차 취준생 박 씨의 이력서에는 빈 공간이 하나도 없다.

경력·어학·자격증·대내외 활동·수상 내역 등 필수기재가 아닌 항목에도 이력들이 빼곡히 기재돼 있다. 박 씨는 서류단계에서 떨어지면 '혹시 다른 게 부족해서 탈락했나' 싶은 생각에 이력서의 모든 빈칸을 꽉꽉 채우는 강박증이 생겼다.

가령 '1천 자 이내 서술'이라는 자기소개서도 990~1천 자까지 꼭 맞춰 제출하는 식이다. 박 씨는 토익 점수도 930점으로 고득점자에 속하지만, 이마저도 불안해 다시 토익 시험을 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가고 싶은 기업에 합격한 동기들의 '정량 스펙'(영어 성적, 학점 등 객관화할 수 있는 스펙)이 나보다 높으면 비슷하게 점수를 높이기 위해 늘 새로 공부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열심히 취업을 준비한 박 씨가 지난해 하반기 지원한 기업은 모두 27군데. 이 가운데 서류단계에서 합격한 데는 9곳이었지만, 이후 필기·면접전형에서는 모두 탈락했다.

박 씨는 "갈수록 스펙은 느는 것 같은데, 서류단계부터는 합격률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정말 불안하다"며 "주위에 취업했다는 동기들의 소식이 들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걸까'하고 한탄하게 된다"고 말했다.

◆신입생부터 취업난, 창업도 어려워

취업이 어렵다보니 한창 캠퍼스 생활을 즐겨야 할 대학교 저학년 학생들도 스펙 쌓기에 급급하다.

올해 2학년이 되는 경북대 학생 황모(21) 씨는 요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인터넷 카페 '독취사'(독하게 취업하는 사람들)에 수시로 접속한다. 각종 대외활동이나 공모전 등 스펙에 유리할 수 있는 정보를 알아놓기 위해서다.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선배들의 '서류 전탈(전부 탈락)했다', '이럴 거면 대학 왜 왔나'와 같은 자조섞인 이야기들이 이젠 황 씨에게도 남의 일 같지 않다.

황 씨는 "입학과 동시에 취업난이 심각한 현실을 깨닫고 미래가 보장된 교대·한의대 등으로 반수를 준비하는 동기들이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반수는 대학을 진학해 1학기 공부하고 휴학 한 뒤 다시 대학입시를 치르는 것을 말한다.

취업 대신 창업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도 있지만 감히 실행으로 옮길 용기는 안 난다는 청년들도 많다. 코로나19가 부른 경기 한파로 사회 초년기부터 큰 빚만 떠안게 될까 두려워서다.

바리스타 김진환(28) 씨는 2년간의 카페 아르바이트 생활을 접고 지난해 창업을 계획했지만 포기했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카페에서 손님이 줄어 폐업까지 고민하는 사장님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김 씨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담긴 가게를 차리는 게 오랜 꿈이었지만 잠시 꿈을 접어놓기로 했다. 성공은커녕 지금 시국을 버텨 낼 자신이 없어서다.

현재 김 씨는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다른 카페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하지만 이력서를 열람조차 하지 않는 곳이 많다고 푸념했다.

김 씨는 "경쟁률이 40~50대 1은 기본이고 카페 아르바이트 자리에 심지어 대학원 출신이 지원하는 것을 봤다"면서 "코로나19 사태로 장시간 대면 교육이 어려워지면서 무경력자는 아예 쳐다도 보지 않는 곳들이 많다"고 했다.

◆청년들 "코로나로 취업 어려워져"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4년제 대학생과 졸업생 4천15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취업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8명(75.5%)이 '취업 환경이 전년보다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2019년 실시한 조사보다 29.4%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지난해 코로나19가 불러온 취업난을 그대로 보여주는 결과다.

올해도 취업난은 계속되거나 지난해 상황과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잡코리아가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올해 채용시장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80%가 '올해와 비슷하다' 혹은 '더 나빠질 것 같다'고 응답했다.

일각에서는 이전부터 지속된 취업난을 코로나19 탓으로만 치부하는 이른바 '기승전 코로나' 세태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요즘 어디를 가든 '코로나19'로 청년세대가 취업하기 힘들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랜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고 무조건 코로나19 탓으로 돌리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일입니다. 지난해 특히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근래에 취업한 선배들을 보면 그 이전에도 정규직 공채가 많지는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일자리가 없는 원인을 정확히 짚어 취업난 극복을 위해 애써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올해 3년 차 취준생 박 씨가 취업 한파는 코로나19 이전부터 계속됐다며 강조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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