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전시회 때 황금물고기를 든 사이보그 작품을 보고 한 아이가 내게 물었다.
"쟤는 왜 생선을 들고 있어요?"
생선? 헉. 생선이라니, 생선이 아니라 물고기지! 순식간에 자연속의 푸른 생명이 마트에 누운 생선이 되어버렸다. 웃긴데 슬펐다. 나는 당황하여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작품 속의 사이보그가 왜 생선을 들고 있었는지 '작가와의 만남'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자.
2014년 여름 손가락 인대를 다쳤다. 작업은 물 건너갔고 붕어낚시를 시작했다. 그 후 어렴풋이 알고 있던 루어낚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플라이낚시 비슷한 거라 생각하면 된다. 젤리같은 웜과 정교하고 아름다운 미노우, 갖가지 장비와 낚시 요령을 공부하며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다.
우리나라 강에 그렇게 아름다운 물고기가 살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 근육질 몸매에 날카로운 이빨, 매끈한 피부에 표범무늬, 홀로그램 같은 금색 바탕에 활짝 피어난 매화 문양. 금테를 두른 까만 눈에 하얀 배. 높게 솟은 등가시의 아름다운 위용.
깨끗하고 산소가 풍부한 계류에 매복하고 있다가 여울을 거슬러 사냥을 나가는 강계의 왕자. 살아있는 물고기만 먹고사는 야생의 사냥꾼. 그리고 겨울이면 용궁같은 깊은 소의 바위동굴에 들어가 꼼짝 않고 은신하는 신비주의자.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쏘가리 낚시의 고단함을. 하동, 구례의 섬진강에서부터 산청을 거슬러 남한강, 강원도 동강까지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녔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 강가, 검은 짐승처럼 흐르는 밤의 강심에서,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내리고 바위를 넘나들며 황금물결 이는 강물 속을 한 없이 들여다보았다. 웨이더로 무장하고 강에 들 때면 온전히 나를 잊었다.
그렇게 헤매다 청령포 물가에 섰을 때,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에 바짝 마른 몸, 유령처럼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유유자적 시작한 낚시가 도박처럼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머릿속엔 오로지 쏘가리를 잡고야 말겠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먹는 것도 잊고 자는 것도 잊고 이렇게까지 해야할 일인가 싶었다. 그러다가도 홀린 사람처럼 강으로 걸어 들어갔다.
패배감이었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지독한 패배감. 실낱같은 희망을 얇은 합사 줄에 실어 던졌다. 닿지 않을 희망이었다. 투둑 툭툭툭… 문득 팽팽해진 줄 너머 묵직한 생명이 느껴졌다. 태아의 발길질처럼 내 심장을 두드려대는 생명의 고동이었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서고 지친 몸이 살아났다. 사냥하는 호랑이처럼 무서운 집중이 나를 집어삼켰다. 스피닝 릴을 감으며 강가로 나왔을 때, 그토록 바라던 쏘가리가 내 눈앞에 퍼덕이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쏘가리를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금맥을 발견한 광부처럼, 산삼을 찾은 심마니처럼. 다음날 아침 밤새 묶어둔 쏘가리를 쓰다듬고 보듬으며 강으로 돌려보낼 때, 작업과 쏘가리 낚시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생선이 아닌 쏘가리, 황금빛 아름다움을 잡았던 거다.
리우 영상설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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