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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시대, 지성들로부터 듣는다] ⑤엄창옥 경북대 교수·석태문 대경硏 선임연구원

[매일신문-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공동기획]
"시민사회 연대 플랫폼 조성…혁신 통한 창의의 대전환 필요

신년 릴레이 대담 엄창옥 경북대 교수.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신년 릴레이 대담 엄창옥 경북대 교수.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최근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사라진 세계 일자리를 2억2천500만개로 추산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때의 4배 수준으로, 1929년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일자리 위기다. ILO는 특히 여성과 젊은 층이 큰 타격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다행히 올해는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재난은 늘 약자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다. 마지막 대담에선 엄창옥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지역사회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을 짚어봤다.

▶자영업자·소상공인 등 취약계층 지원을 두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엄창옥=국내 소상공인 비율이 급격하게 높아진 것은 1997년 외환위기 후유증이다. 출혈 경쟁구조로 뒤얽힌 이들은 한계상황에 놓여 있어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행정명령으로 영업하지 못한 데 대한 손실보상제 추진이 필요하다. 사회 전체를 위해 기업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취지의 이익공유제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방향이어선 안된다. 이윤을 내는 기업에는 조세 정책을, 손실을 보는 기업에는 재정지원 정책을 조합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석태문=사회적 거리두기로 경제생태계의 연결망이 많이 약화됐다.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임차료, 금융비용을 덜어주는 정책 지원과 매출 급감에 따른 생계 보호가 동시에 필요하다. 일본, 독일, 영국 등은 기존 매출액의 70~80%까지 보전해주고 있기도 하다. 작은 기업이 사라지면 결국 대기업도 망하기 마련이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도 논의돼야 한다. 삼성전자가 상생형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을 통해 중소 의료기기 업체의 코로나19 백신용 주사기 대량 생산을 도운 사례를 들 수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기본소득제 논의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석=그동안 미뤄왔던 양극화 해소, 환경에 대한 투자 같은 이슈에 대한 논의가 코로나19 탓에 강제적으로 앞당겨졌다. 기본소득제처럼 과거에 상상조차 하지 못한 큰 정책은 사회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점에 나온다. 사실 우리 사회는 늙어가는 산업생태계와 성장 중단 상태, 고령화·저출산의 압축적 진행에 멍들어 있다.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려면 기본소득제를 비롯한 새로운 사회 계약이 필요하다. 매일 쏟아지는 조그마한 정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엄=한국 사회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던 기본소득제가 이렇게 빨리 화두가 될 줄 몰랐다. 대구에서도 기본소득제를 고민하는 포럼을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학계와 시민단체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민 의식이 많이 달라졌다는 방증이다. 팬데믹이 기본소득제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배경은 양극화 심화와 함께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내수 부족이다. 양극화는 소비 감소뿐 아니라 계층 갈등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다만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든 도와야 한다는 감상 대신 냉철한 이성으로 접근해야 한다.

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원.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원.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지난 1년 동안 우리의 팬데믹 대응은 어땠나

석=초기에는 방역당국이 준비를 많이 했다고 본다. 2015년 메르스 때 경험을 살려 관련 업체들이 지난해 초부터 바이러스 진단키트 개발에 착수토록 했다. 대구경북도 메르스 당시 매뉴얼을 바탕으로 의료행정 거버넌스를 곧바로 작동하는 등 첫 확진자가 나올 때까지 발 빠르게 대응했다. K방역 성공의 핵심은 방역행정 투명성, 뛰어난 IT·의료 수준, 시민들의 민주적 대응이다. 서구에서 팬데믹 통제에 대한 반발이 심하고 상황이 악화한 것은 '개인을 넘어 모두를 위한 자유'라는 의식이 부족했던 탓이 아닐까 한다.

엄=한국인의 철저한 방역지침 준수를 유교적 순종주의 영향이라고 보는 일부 서구인의 시각은 잘못이란 지적에 동의한다. 덧붙이자면 개방적 접근이 특히 돋보였다. 정부와 언론의 신속한 정보 공개, 지역간 자유로운 이동 유지, 재외국민의 국내 이송 과정에서 나타났던 지역민들의 우호적 태도, 방역 수준의 유연한 단계적 접근 등이다. 개방성이야말로 시민들의 창의적 방역 아이디어를 이끌어낸 원천이기도 했다. 대구의 경우 사태 초기에 국가적 역량이 지역에 집중된 덕분에 잘 견뎌낸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미진했던 부분을 꼽는다면

엄=정부 대응이 시민 요구에 늘 후행했다는 점이 아쉽다. 위기에 대한 사회적 대응체계가 예상보다 훨씬 미흡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새로운 형태로 다가올 미래의 위기에 대비해 민관 협력 시스템을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모든 것을 공적 영역에서 미리 갖춰둔다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합리적이지도 않다. 경제에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해지는 'K자 형 회복' 예방에 좀 더 신경썼어야 했다. 한국형 팬데믹 극복 장치로 재분배적 세수 확대와 사회안전망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

석=지난해 봄 대구경북에서 환자가 속출하면서 병상이 부족해지자 자치단체장이 다른 시·도에 도움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 이런 상황은 국민들을 불편하게 한다. 산불 등 대형 화재가 나면 전국 소방헬기가 한곳에 집중되듯 자치단체간 연대가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특히 현재 진행 중인 3차 유행은 집단감염 위주였던 1·2차 유행과 달리 가족·지인 중심이다. 현장에서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매뉴얼 플러스 알파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지역사회는 무엇을 함께 고민해야 할까

엄=우선 시민사회가 연대할 수 있는 플랫폼 조성이다. 위기사회에선 무엇보다 지역공동체 복원이 중요하다. 진정한 복지는 정부도 시장도 할 수 없는 제3의 영역인 시민 연대에서 나온다. 둘째는 교육과 돌봄이다. 비대면이 뉴 노멀로 자리잡으면서 나타난 사회계층간 학습격차를 보완하는 것이 지역 정책의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셋째, 청년이 머물고 싶은 산업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 지원은 물론 고용여건 개선이 필요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의 경영전략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실현이 이뤄지길 바란다.

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지역사회의 전문가들은 드라이브 스루 검사·생활치료센터 도입 같은 창의성으로, 시민들은 연대를 통해 슬기롭게 대응했다. 창의와 연대는 포스트 코로나 단계에서 더욱 강화돼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회복'을 고민해야 한다. 기존 산업사회가 만든 가치와 단절하는 회복,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기 위한 회복이다. 디지털·그린뉴딜을 통한 혁신으로 창의의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 팬데믹 장기화로 조금씩 조급해지는 시점이지만 개인의 자유를 넘어 모두를 위한 자유를 회복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대담자 프로필

엄창옥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경북대 경제학 박사. 전 대구사회연구소 소장

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경북대 경제학 박사. 전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정책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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