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주식, 가상화폐와 같은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청년들이 투자에 혈안이 돼 있다. 경기 침체에 코로나19까지 덮치면서 불확실한 미래의 대비책은 투자밖에 없다고 여기는 청년들이 생겨난 것이다. 특히 무섭게 치솟는 집값을 보면서 '월급만으로는 희망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이들은 퇴근 후에 스터디, 유튜브 등으로 국내·외 주식 시장에 대한 정보를 부지런히 공부한다. 그런가 하면 '홀로 뒤처져선 안 된다'는 생각에 섣불리 주식에 손을 댔다가 큰 손실을 봤다는 사례도 나온다. 형편상 최근 불장(상승장)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청년들에게는 순식간에 '벼락거지'가 된 것 같다는 한탄을 들을 수 있었다.
◆퇴근 후 주식 스터디·유튜브 '열공'
1년 차 직장인 김진현(29) 씨는 요즘 대학 동문 50여 명이 함께 만든 '미국 주식 스터디 단체 채팅방'에서 이른바 '핫한 종목'을 공유하는 게 일상이다.
채팅방 구성원 대부분이 '월급만 모아서는 집 한 채도 못 산다'는 심정에서 지난해부터 주식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들이다. 이들 구성원 간에는 제각기 역할이 있다. 김 씨의 역할은 매일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에서 언급되는 종목을 분석한 뒤 채팅방에 공유하는 것이다. 다른 구성원들은 미국 기업이나 정치인 관련 뉴스, 각국의 코로나19 이슈 등을 스크랩해 관련 종목을 선정한다.
구성원 대부분이 오전 일찍 출근하는 회사원이지만 이 채팅방에서는 새벽에도 ▷오늘 상승장 혹은 하락장인 이유 ▷매도 차익에 대한 세금 줄이는 방법 등에 대한 수백 개의 대화가 오간다.
김 씨는 "주식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뒤부터는 퇴근 후 진짜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다"며 "직장만 성실히 다녀서는 결혼은 물론 노후 준비도 안 되겠다는 심정에서 시작했는데, 매일 신고가를 경신하는 종목을 보면 근로 소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일 할 의욕이 사라질 정도"라고 했다.
4년 차 공무원 홍모(28) 씨 역시 퇴근 후에는 늘 주식 투자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홍 씨는 지난해 주식, 부동산 시장에 불어닥친 열풍을 보고 투자에 뛰어들었다. 240만원 남짓의 월급만 모아서는 갈수록 벌어지는 자산 격차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유명 투자가들이 낸 서적도 탐독한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가 전업 투자자로 성공한 사례, 보유한 주식에서 나오는 배당금만으로 매달 수백만원을 버는 투자자들을 보면서 홍 씨도 최근 '50세 전 은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최근 미국 주식, ETF(상장주식펀드) 등에 관심이 생긴 그는 미국 주식시장을 분석하느라 자정 넘어서까지 스마트폰을 보다가 잠들기 일쑤다.
홍 씨는 "은퇴 후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자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승진을 목표로 직장에서 인정받는 동료들을 봐도 마음이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며 "월급만 믿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직장은 투자에 필요한 시드머니(초기자금)를 모으기 위한 방편으로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준비 없이 투자했다 큰 손실도
상승장에서 '홀로 뒤처질 수 있다'는 두려운 마음에 투기에 가까운 투자를 했다가 큰 손실을 봤다는 사례도 속출했다.
직장 때문에 본가에서 독립한 박모(31) 씨는 매달 월세 60만원을 주식으로 벌겠다는 목표로 투자를 한다. 시드머니는 1천만원가량. 매달 6% 수익률을 올려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이에 박 씨는 투자 종목 대부분을 주가 변동이 큰 테마주로 구성했다. '바이든 관련주', '코로나 관련주' 등 소문으로 들었던 주식에 무턱 넣었다가 이틀새 200만원 가까이 손실을 본 적도 있다.
박씨는 "월세 생활을 청산하고 한순간에 '내 집 마련'의 목표를 이루고자 투자한 건데, 큰 손실을 봐 속상하다"며 "불장(상승장)이라고 해서 누구나 다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 토로했다.
◆'벼락거지' 청년들 박탈감
투자로 큰돈을 버는 청년들이 있는 반면 생활이 팍팍한 청년들에게는 주식, 가상화폐 등이 모두 '먼 나라 이야기'일뿐이다. 이들에게는 상승장에서 소외된 이들을 일컫는 '벼락거지'가 자신을 두고 하는 이야기라며 씁쓸해했다.
취업 준비생 신모(26) 씨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학자금 대출, 월세, 각종 학원비, 시험비 등을 내고 나면 당장 밥 값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남는 게 없다"면서 "이런 상황에 주식은 언감생심이다"고 했다.
이들은 투자에 성공한 이들과 자산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푸념도 늘어놓았다.
대기업 영업직 회사원 이모(35) 씨는 결혼 전 자영업에 실패해 남은 빚이 아직 수천만원에 이른다. 300만원대의 월급에서 대출 이자, 생활비, 공과금 등을 제외하면 투자금 마련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다. 그는 지난해 급상승장에 수백만원이라도 주식에 투자를 해보고 싶었지만 '이번에 실패하면 진짜 끝'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
이 씨는 "가상화폐에 투자해 한 달에 60~70% 수익을 올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솔직히 힘이 빠진다"며 "투자로 큰 돈을 번다는 것도 형편이 일정 수준 이상인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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