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2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구를 덮쳤을 때 위기의 최전선에서 대구를 지킨 것은 대구의 의료진이었다. 그들 자신과 가족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시절의 우리는 우리 자신의 두려움과 고통이 너무 커서 그들의 두려움과 고통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코로나 직격탄에서 가까스로 벗어나고 나서야 사람들은 대구 의료진의 희생과 용기에 대해서, 그리고 그 힘과 의지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에 대해 돌아보기 시작했다. 경북대학교 의학도서관에 소장된 '대구의학전문학교잡지'에서 어쩌면 그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대구의학전문학교잡지'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전신인 대구의학전문학교에서 1939년에 창간된 전문학술지이다. 경북대학교 의학도서관 소장본을 제외하고는 일본 도쿄대학교 의학도서관에 귀중본으로 특별 소장되어있는 것이 현재 남아 있는 책 전부이다. 지금은 아무도 이 책의 존재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지만 이 책에는 현재 대구 의료의 힘의 연원을 읽을 수 있는 근거가 들어있다.
학술지 '대구의학전문학교잡지'는 대구의학전문학교에서 발족한 '대구의학전문학회' 회원의 의학연구논문과 임상경험사례로 이루어져 있다. 식민지 말기 물자 부족으로 여타 잡지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폐간되던 시기였는데도 이 잡지는 1942년 폐간까지 한 번의 결호없이 발행되었다. 연구인력과 자금력이 그 정도로 풍부했던 것이다. 도쿄제국대학 의학부 내과 교수 출신의 가미무라 나오미를 비롯해서 교토제대, 규슈제대 등 제국대학 의학부 출신의 엘리트 교수진에, 삼 백 명이 넘는 졸업생이 연구와 진료 방면에 진출해 있었으니 연구역량은 풍부했다.
잡지 매호마다 기입된 수십 명의 기부금에 정기회비까지 더해져서 연구와 회지 발행을 위한 자금도 계속 모이고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정부로부터의 지원도 있었다. 연구를 진행하기 위한 모든 조건이 구비되었으니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결과를 보고하기 위한 학술지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말하자면 '대구의학전문학교잡지'는 대구의학전문학교 의료진이 진행한 의학연구 발표의 장이었던 것이다.
이들 의료진은 자신이 속한 대구지역에 대한 책무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잡지에 실린 의학논문 중에는 1938년 대구를 휩쓴 소아마비 발생 추이, 1940년 대구 수세식 변소 위생 상황, 1940년 대구사람들의 장내 기생충 연구 등 대구관련 연구도 있있다. 연구진들은 유행질병과 비위생적 환경으로부터 대구를 지켜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연구진이 일본인인가 조선인인가를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의료에 '차별'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연구가 대구의 환경을 개선하고 사람들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연구진들이 식민지 말기 불안정 사회상황 속에서도 쉬지 않고 인간을 질병에서 구하기 위해서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대구의학전문학교잡지'에는 식민지 시기 대구의 현실과 의료의 영역에서 대구를 지키고 있던 의료진의 노력이 들어있다. 2020년 대구를 덮친 코로나 위기상황에서 대구의료진이 보여준 눈물겨운 헌신과 노력은 바로 이와 같은 오랜 정신적 연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김용선·정혜영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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