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표류해온 영남권 신공항 사업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정치 논리로 변질되면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성추문 의혹으로 낙마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선거용으로 내놓은 공약을 4월 보궐선거를 앞둔 더불어민주당이 이어받으면서 가덕도 신공항 추진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한 데 이어 완공되더라도 관문공항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물음표가 달린다.
특히 경제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채 선거 포퓰리즘에 함몰돼 '닥치고 식'의 공항건설을 서두르다가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게 공항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권과 정부는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압승하자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의 요구를 수용해 국무총리실에 민간검증위원회를 꾸린 뒤 김해신공항 확장안 백지화 결론을 내고 가덕도 직행을 선언했다. 영남권 5개 시도지사 합의를 바탕으로 결정한 대형 국책사업을 4년여 만에 손바닥 뒤집듯 하는 '최대·최악의 선례'로 남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총리실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총리실은 검증위 뒤에 숨었고,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에 김해신공항 백지화 이후 검토를 떠넘겼다. 침묵하던 국토부는 '특별법 국회 통과'를 조건으로 현재 진행 중인 '6차 공항계획에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에 대한 국회 심의결과를 반영하겠다'는 원칙론을 내놓았다. 여당이 팔을 비틀기 전에는 움직이기 어렵다는 속내마저 엿보인다.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사례에서 보듯 '뒤탈'이 분명한 사안을 놓고 소극적 입장을 보이는 것에 대해 정부세종청사에선 동정론마저 제기될 정도다.
여권이 주무 부처의 의견을 배제한 것에 대해 정책 추진의 기본 절차를 무시한 것이란 비판이 거세다. 특정 지역을 콕 찍어 밀어붙이는 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면'이라는 정치 공학이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윤대식 영남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주무 부처의 면밀한 검토 없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며 "김해신공항 백지화 및 가덕도 결정과 더불어 아주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역 간 갈라치기로 케케묵은 지역 갈등이 재점화하면서 위험수위로 치닫는 것도 부담이다. 대구경북과 부·울·경 사이의 대립 구도로 비치면서 국가 백년대계라는 담론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부산의 국민의힘 의원들이 민주당과 별도로 특별법을 발의한 데 이어 보선 후보들은 "해운대와 가덕도를 15분 만에 오가는 첨단 교통수단을 만들겠다"(박형준), "김해공항을 전부 가덕도로 이전하자"(이언주)라며 일제히 가덕도 띄우기 행렬에 가세한 상황이다. 여당의 입법 폭주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적전분열 양상을 보이며 당 차원의 대응은 뒷전이다.
참다못한 대구경북 주민들이 지난 12일 김해신공항검증위 결정이 편파적이었다며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했지만, 여권의 폭주에 제동을 걸지는 의문이다. 민주당은 특별법의 2월 통과뿐 아니라 당장 내년 착공을 벼르고 있다. 오는 2030년 개최 예정인 부산 엑스포에 맞춰야 한다는 논리지만 부산시장 보선을 넘어 대선까지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대구 수성갑)는 27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민주당이 선거를 앞두고 다급하니 가덕도를 이용한다"고 거듭 비판했다.
윤대식 교수는 "국토 전체를 아우르는 공항 개발 청사진 없이 조각조각 의사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며 가덕도 신공항 역할과 경제성 등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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