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동을 걷다, 먹다] 18. 영남 3대 누각 영호루(映湖樓)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

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

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

영호루 설경
영호루 설경

18번째 이야기 안동 영호루 이야기

물을 다스리는 치수(治水)는 세상을 다스리는 '치세(治世)의 기본이었다. 그래서 수리(水利)의 도는 치세법(治世法) 중 으뜸이었고 둑을 잘못쌓는 등 물을 잘못 다루었다가 홍수가 나고 흉년이 나면 왕이 쫓겨나거나 수백 년 된 왕조도 뒤집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였다.

후진타오 전 중국 주석이 대학시절 칭화대학교 수리공정과에서 하천시설발전소 등을 전공한 것도 그가 중국 최고지도자가 되는 길에 적잖은 도움이 됐다는 후문이다.

'물을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지배한다.'

태초에 강을 따라 문명이 형성되었다. 중화문명도 황하(黃河)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장강(長江)을 따라 중화문명이 꽃을 피웠다.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문명도 한강과 낙동강이라는 두 줄기의 강이 우리 문화의 원류다.

그래서 도도히 흐르는 강은 역사의 흐름을 상징한다. 강이나 호수에 세워진 악양루와 등왕각을 비롯한 중국의 누각들이 웅장하고 위압적인 면모를 자랑한다면 우리의 누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단아하고 수려한 풍모로 특징지을 수 있다.

수년 전 두보(杜甫)를 비롯한 수많은 당대 시인문인들이 찾아 나섰던 웨양루(岳陽樓, 악양루)를 찾았다. 동정호(洞庭湖)를 바라보는 곳에 자리잡은 악양루는 시대에 따라 중수되면서 모습이 바뀌기도 했지만 지금의 악양루와 같은 전형적인 청나라양식의 3층 누각이었다. 누각 입구에 걸려있는 두보의 시 <등악양루>를 필사한 마오쩌둥의 <등악양루>필사본이 먼저 눈에 띄었다. 두보의 시보다 범증엄의 <악양루기>가 더 유명하지만 마오의 두보시 필사본이 더 두드러지게 들어왔다.

후난성 악양시의 악양루
후난성 악양시의 악양루

昔聞洞庭湖 今上岳陽樓 吳楚東南坼 乾坤日夜浮

親朋無一字 老病有孤舟 戎馬關山北 憑軒涕泗流.

예부터 동정호는 들어 왔었지만, 이제 그 악양루에 오르니,

오와 초 땅은 동남으로 탁 트이었고,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물에 떠 있구나.

친척과 벗은 편지 한 장 없고, 늙어 병 든 몸 외로운 배로 떠돌다니.

고향 산 북녘은 아직 난리판이라, 난간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네.

마침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어 악양루와 눈앞에 보이는 동정호의 풍경은 두보의 시정(詩情)를 더욱 떠올렸다.

악양루에 오르니 동정호의 또 다른 자랑거리라는 작은 섬 '군산도'가 보였고 빗속에 배들이 오가는 모습이 화들짝 놀라게 했다. 배는 놀잇배가 아니라 대형화물선이었다.

마오쩌둥은 왜 두보의 시를 필사했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악양루는 우리나라에도 두 곳에나 있다. 토지의 주무대인 경남 하동 악양면에 있는 악양루와 함안의 악양루가 그것이다. 두 악양루 모두 동정호의 악양루에서 비롯된 것이다.

낙동강 물길 천 삼백 리. 구비쳐 흐르는 낙동강은 한반도 문명의 기둥이자 영남의 젖줄이었다. 강을 따라 마을이 생기고 역사가 축적됐을 터.

그래선가 낙동강에는 이름난 누각들이 꽤 있다. 가장 상류인 안동에 '영호루'가 있다면, 중류의 의성 관수루가 있고 밀양의 영남루와 진주 남강의 촉석루가 영남의 이름난 누각으로 꼽혔다. 영남루를 제외한 다른 누각들은 6.25 전쟁 때 소실되거나 홍수로 훼손되는 바람에 새롭게 중수한 누각이라 문화재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영호루의 공민왕 친필 현판
영호루의 공민왕 친필 현판

영호루

안동 영호루는 안동 신시장 등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영호대교 옆 낙동강변 언덕에 있다. 원이엄마 이야기가 짙게 밴 능소화 거리가 시작되는 영호대교와 시민운동장으로 갈라지는 사거리 바로 옆에 있어 누각에 오르면 낙동강이 흐르는 모습과 영호대교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풍광으로야 안동댐 좌측에 안동댐 건설과 함께 지은 '안동루'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는 풍광보다 더 멋진 '뷰'는 없다. 특히 저녁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안동루에 올라 바라보는 낙조는 천하제일이다.

그러나 영호루의 낙조도 안동루 못지않다. 혹은 강 건너에서 바라보이는 영호루의 야경은 안동야경의 또 다른 명소로 꼽힌다.

영호루 전경. 숲에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는다.
영호루 전경. 숲에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는다.

'영호루'(映湖樓)의 건립시기는 특정되지 않는다. 고려 때 라는 것 외에는 어느 문헌에서도 건립연대를 찾아내지 못한 모양이다. 다만 강을 바라보는 쪽에 걸린 한자 현판 '映湖樓'는 고려 공민왕의 친필 현판이라는 점에서 고려시대에 건립됐다고 짐작할 뿐이다.

고려시대에 건립된 오래된 누각이지만 여러 차례 홍수피해를 입어 훼손됐고 결국 공민왕의 친필 현판 외에는 누각이 사라졌다. 그러자 이를 안타까이 여긴 안동시민들이 나서 강물에서 찾아낸 현판을 바탕으로 1969년 옛 모습을 되살려 중수한 것이 지금의 영호루다. 한자 현판 뒤쪽에는 한글로 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현판글씨가 걸려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하긴 상류라고 해도 큰 홍수가 여러번 났다면 누각이라고 온전할 수가 있었을까.

능소화거리가 시작되는 그 길에서 천천히 강쪽으로 난 오솔길을 접어들면 영호루가는 길이다. 가다가 보면 오른쪽 언덕에는 충혼탑이 보인다. 민가를 지나 바로 옆에 있는 돌계단이 정겹다. 바짝 마른 겨울나무 사이로 누각이 보이기 시작했고 한글로 적은 영호루 현판도 보였다. 누각에 걸려있는 '한글 현판'은 아무래도 낯설었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 전 대통령은 전국 곳곳에 직접 한글로 현판을 하사해서 걸도록 했다. 일제총독부의 잔재를 씻겠다며 광화문을 만들어 한글로 광화문 현판을 게시하도록 한 것부터 순시하는 곳곳에 한글현판을 직접 써서 하사했다. 군사독재문화의 잔재라기보다는 한자와 왜색문화에 젖어있던 당시에 우리 문화에 새로운 인식을 촉구하기 위한 절절한 마음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래선가 그 시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동 영호루의 '박정희 영호루' 현판은 떼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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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으로 오르는 돌계단은 꽤나 운치가 있었다. 자주 가던 곳이었지만 '잔설'내린 누각으로 가는 길은 미끄러웠다.

아쉬웠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누각의 기둥이 콘크리트였다. 지금 옛 문화재를 복원하거나 중수(重修)한다면 고증을 통해 최대한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겠지만 홍수로 완전히 훼손돼 형체가 사라져버린 누각을 새로 지은 1969년 당시에는 다시는 홍수피해를 입지 않도록 튼튼하게 짓는 것이 우선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콘크리트 기둥은 유감이다. 진주 촉석루도 6.26때 소실된 것을 새로 지었는데 옛 모습 그대로 잘 지었지 않은가.

누각에 오르면 시 한 수 저절로 나올 정도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세 개의 다리다. 맨 왼쪽은 안동역이 송현동 신역사로 이전해가면서 기차가 다니지 않아 폐선이 된 철도교다. 맨 오른쪽은 구시가지로 이어주는 영호대교다. 그리고 나란한 다리는 영호대교 개통이후 인도교로 활용되고 있는 안동교다.

누각 기둥이 구분짓는 그림 속에는 강과 다리와 건너편 안동시가지의 아파트들이 가지런하게 자리잡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모습은 달라진 것이 없을 터였다.

관리가 잘 되지 않던 예전에는 안동시민들이 누각에 올라 짜장면도 시켜먹고 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들여온다. 그들도 아마 이 영호루룰 찾은 당대 이름난 시인묵객처럼 주안상을 펼치고 시 한 수 지어보려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누각 중앙 좌우로는 '낙동상류 영좌명루'(洛東上流 嶺左名樓)라고 쓴 큰 현판이 걸려있다. 1860년 훼손된 영남루를 중수한 당시 안동부사 김학순(金學淳) 이 쓴 현판이다. 그리고 누각을 사방으로 둘러가면서 퇴계와 정도전, 정몽주 권근 우탁 이현보 주세붕 김종직 선생 등 당대 내로라하는 문인 학자 세도가들의 한시가 편액으로 빼꼭하게 걸려있다.

그 중에 퇴계 이황 선생의 시 한 수 옮겨본다.

映湖樓(영호루) 퇴계

客中愁思雨中多 況値秋風意轉加

獨自上樓還盡日 但能有酒便忘家

慇懃喚友將歸燕 寂寞含情向晩花

一曲淸歌響林木 此心焉得以枯槎

나그네 시름 비 만나 더한데

가을바람이 더욱 심란하게 하는구나,

홀로 누각에 올라 하루를 다 보내도

술잔들어 능히 집에 돌아갈 그리움 잊는다,

은근히 벗을 불러 돌아가는 제비는

쓸쓸하고 적막한 정을 품고 지는 꽃을 향하네

한 곡조 맑은 노래 숲속을 울리는데

이 마음 어쩌다 삭정이가 되었을꼬

해질녘 영호루에 올라 낙조를 바라보는 것도 좋고 이른 새벽 운동삼아 강변을 걷다가 누각에 올라도 좋다.

낙동강의 고즈넉한 풍광을 기대한다면 안동루에 올라보기를 권한다.

안동루는 오래된 옛 누각은 아니지만 풍광하나는 뛰어나다. 안동루는 안동댐 건설과 함께 세워진 누각으로 안동댐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만들어내는 낙동강과 월영교까지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뷰맛집'이다. 발아래는 요즘 뜨고 있는 안동의 핫플레이스 지베르니의 정원으로 불리는 '낙강물길공원'이다. 낙강물길공원에서 놀다가 위쪽으로 10여분 걸어 오르면 안동루에 오를 수 있다. 누각에 오르는 도중에 만나는 철제계단이 다소 불안해보일 수도 있다.

서명수 슈퍼차이나 대표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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