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왜 이 재판을 받는지 알고 있나요?"
"특정 생각을 품고 주 경계를 넘어서요. 총기, 마약, 소녀가 아니라 생각을 반입했대요. 뉴욕에서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일리노이까지 가면서 생각을 품고 있었어요. 그 이유로 가스 맞고, 구타당하고, 체포돼서 법정에 세워졌죠."

지난해 개봉한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1968년 8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폭동을 선동한 혐의로 체포된 7인의 법정 재판을 다룬 이야기다. 7인은 전국 학생운동가 조직인 민주사회학생회(SDS) 공동대표 톰 헤이든과 레니 데이비스, 신좌파 성향의 청년국제당(YIP) 공동 창립자 애비 호프먼과 제리 루빈, 전미월남전종전운동위원회(The MOBE) 대표 데이비드 델린저, 그리고 사회운동가 리 와이너와 존 프로인스. 이들은 베트남 전쟁을 지지하는 민주당 대선 후보 휴버트 험프리의 선출을 저지하기 위해 전당대회가 열리는 시카고로 모여든다. 초기 평화·비폭력 시위를 계획했으나 수만 명으로 구성된 경찰·주 방위군과의 대치 상황을 겪으며 결국 시위는 유혈 사태로 번지게 되는데.
이듬해 새롭게 들어선 공화당 닉슨 정부와 존 미첼 법무장관은 유능하다고 정평이 난 리처드 슐츠 검사를 지명, 시카고 시위 주동자 7인의 기소를 맡긴다. 그들에게 적용될 법은 '랩 브라운 법'. 해당 법은 남부 백인과 미 의회가 흑인 운동가들의 표현권을 제한하기 위해 제정한 법안으로 판례가 전무하다. 그럼에도 새 정권은 '랩 브라운 법'을 적용해 7인을 폭동 선동을 목적으로 주 경계를 횡단한 혐의로 징역 10년형의 무리한 기소를 요구한다. 전 정권 당시 법무부 수사 결과 경찰이 먼저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밝혀졌고 이들 7인을 기소할 이유가 없다고 결론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게 정부, 검찰, 법원이 미리 짜 맞춘 결과를 향한 악명 높은 재판이 시작된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 측과 변호인은 폭력 선동의 목적이 없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편향된 사건 담당 판사를 중심으로 시위대에 침투한 증인들의 위증, 배심원 조작과 도청, 피고인 측 핵심 증인 진술 방해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들을 불리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세력에 의해 그 노력은 번번이 좌절되고 마는데. "이 재판은 이미 결론을 정해놓은 '정치 재판'이다"고 토로하는 피고인들에게 변호사 컨슬러는 "재판에는 민사 재판과 형사 재판이 있어. 정치 재판이란 건 세상에 없어"라고 일축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법원과 검찰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며 법정에서 재판의 불합리함을 강하게 표출한다.

정권의 입맛에 맞춰 재판이 이뤄지는 영화의 모습은 우리에게 강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법원과 검찰 등 사법기관과 정치권력의 결탁, 즉 사법의 정치화는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쟁점이 되어 온 사안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발생한 일련의 사태들을 보고 있자면 시카고 시위가 발생한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있는지 되묻게 된다. 특히 박근혜 정권에서 행해진 일명 '사법 농단' 사건은 법을 최후의 보루로 삼아왔던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당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은 상고법원(대법원이 맡는 상고심(3심) 사건 중 단순한 사건만을 별도로 처리하는 법원) 설립을 위해 청와대에 재판 거래를 미끼로 전방위 로비를 펼쳐왔다. 그 결과 전범기업 강제징용 손해배상, KTX 승무원 해고, 전교조 법외노조화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개별 재판들에 법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
새 시대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촛불 정신으로 태어난 현 정부의 모습은 좀 다를까. 2019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하며 "권력형 비리에 대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길 바란다"며 공정한 수사를 주문했으나 막상 검찰의 화살이 정권을 겨누자 역대 정권들의 부패한 모습을 답습하기 시작했다.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총장을 향해 두 차례의 수사지휘권을 발동했고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며 검찰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다. 결국 법원이 윤 총장의 손을 들어주며 징계는 무산됐고 문 대통령이 정국 혼란에 대해 사과를 함으로써 갈등은 일단락됐지만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사유와 징계위 절차의 정당성에 논란이 일며 정치 재판이라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영화 속에서 시카고 7인 중 한 명인 레니 데이비스는 자신이 체포된 이후로 베트남전에서 사망한 미국 군인의 명단을 매일 기록한다. 그 이유를 묻는 동료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재판이 시작되고 나서도 이 일이 누굴 위한 건지 기억하려고…." 비록 결론이 정해진 억울한 재판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애초 시카고로 향했던 이유인 '평화' '생명'이라는 가치를 잊지 않고자 하는 깊은 다짐이다.
정권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법의 정치화 또는 정치의 사법화 굴레에서 벗어나 우리 정부와 법원·검찰이 걸어가야 할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정권 유지? 권력 독점? 아니면 사익 추구? 어떠한 방향이 됐든 국민의 신뢰를 잃은 그 길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국가기관이 지켜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슬며시 물음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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