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 과정에 있어 기업집단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개발도상국의 기업집단은 다각적 사업 전개, 피라미드형 소유 구조, 동족에 의한 소유 경영 지배라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기업집단을 '동족기업'(Family firms)이라고 부른다. 동족기업의 생성, 발전, 존속은 법 제도, 정부 정책, 국민적 공감대 등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을 제외하고, 동족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로 멕시코와 일본을 들 수 있다.
우선 멕시코의 경우를 살펴보면, 멕시코에서 동족기업의 유지와 번영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요인은 상속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동족들은 상속세를 내기 위한 자금 마련 때문에 동족이 가진 주식의 감소나 경영권의 상실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또한 의결권 제한 등의 조건을 덧붙인 복수 의결권 제도와 동족이 가진 주식을 관리하는 지주회사의 존재도 동족기업의 유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1961년 상속세를 폐지한 이후 재도입을 검토하고 있지 않고, 대규모 기업집단이 출현하기 전에 도입된 복수 의결권 제도나 지주회사에 대한 법률은 기업가들의 설득에 의해 성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멕시코의 상위 20개 동족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고, 동족기업 간의 경쟁도 심하지만 경영권 승계에 관한 잡음은 없다.
한편으로 일본의 상속세는 최고 55%까지 높고, 미국에서조차도 허용하는 복수 의결권 제도를 허용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피라미드형 소유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멕시코와 같이 소유와 경영을 같이하고 있는 동족기업이 도쿄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 중 1천200사 정도 있다. 최근에 교토산업대학의 심정욱 교수를 중심으로 한 연구팀이 동족이 소유한 주식 지분은 5% 미만임에도 경영권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전체 상장기업 중 7.4%이고, 그중 대표적인 기업이 토요타 자동차, 스즈키 자동차, 카시오 등과 같은 동족기업이 있음을 밝혔다.
일본은 법 제도와 정부 정책에 있어 멕시코와 아주 극적으로 대비됨에도 동족기업이 유지 존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최대 기업인 토요타 자동차 사장에 창업자의 손자인 토요타 아키오 씨가 취임할 때 아무런 반대도 없었고, 오히려 기대와 찬사가 쏟아졌었다. 일본의 동족기업은 전문 경영인이 경영하는 회사보다도 성과가 더 낫고, 경영이 어려울 때 노동자를 해고 정리하는 확률이 낮다고 한다. 일본에서의 동족기업은 미국형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보다도 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좋은 이미지가 일본 국민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환경에서 일본의 동족기업은 경영권 상실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주식 공개를 통해 기업을 성장시키는 선택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소유와 경영을 완전히 장악한 전통적인 동족기업에서 경영권만 가진 동족기업으로, 결국 소유와 경영이 완전히 분리된 비동족기업으로 변해 간다. 심정욱 교수의 연구 결과는 일본에서 동족기업에서 비동족기업으로 바뀌는 요인은 동족 내의 전략적 자원의 감소에 있음을 밝혔다.
한국에서 재벌이라 불리는 기업집단도 동족기업의 한 형태이다. 한국의 재벌기업은 상속세가 높고, 복수 의결권 제도를 허용하지 않는 면에서는 일본과 비슷하고, 피라미드형 소유 구조를 허용하는 면에서는 멕시코와 비슷하다. 두 나라의 동족기업들과 비슷하게 기업의 성과는 비동족기업보다 좋음에도, 동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영권 승계에 있어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최근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삼성전자의 돈으로 뇌물을 주었다는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이라는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되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 경영권 승계가 창업자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면, 기업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장시키려는 인센티브가 낮아져 한국의 경제성장과 고용 창출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결국 우리 안에서 우리가 키운 기업이 경영권 승계의 논란으로 어려워지면, 우리 모두가 피해의 당사자가 된다. 동족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가 원활히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다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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