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와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은 우리네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최근 들어 AI와 VR를 활용한 방송 프로그램들이 부쩍 늘고 있다. 과연 이들 방송들은 이 기술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고, 그것은 어떤 영향을 가져올까.
◆'너를 만났다', VR로 다시 만난 가족
"우리 다음에 만나면 많이 놀자. 나도 엄마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엄마가 그토록 듣고 싶어했던 나연이의 목소리. 하지만 4년 전 혈액암 판정을 받고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나연이에게서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목소리를 들은 엄마는 가슴 속 꾹꾹 눌러놨던 이야기를 꺼냈다.
"나연아 엄마는 나연이 정말 사랑해. 나연이가 어디에 있든 엄마 나연이 찾으러 갈 거야. 엄마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것들 다 마치고 나면 나연이한테 갈게. 그때 그때 우리 잘 지내자. 사랑해 나연아."
작년 초 MBC에서 방영했던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VR 기술로 재연된 나연이를 엄마가 가상현실 속에서 만나는 내용을 담은 바 있다.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상 TV다큐멘터리상을 받기도 한 이 휴먼다큐가 1년 만에 시즌2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 편의 주인공은 사별한 아내를 VR로 다시 만난 김정수 씨. 다섯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김정수 씨가 출연한 이번 편의 부제는 '로망스'다. 작년 나연이 엄마의 이야기가 먼저 보낸 아이에 대한 애끓는 모정을 담았다면, 이번 김정수 씨의 이야기는 먼저 보낸 아내에 대한 애끓는 사랑을 담았다.
사실 VR로 재연된 모습은 아직까지는 완벽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진짜 모습과 가상 인물 사이의 간극은 이들을 '다시 보고픈' 사람들의 절절한 마음이 채워 넣었다. 그렇게 가상으로라도 잠깐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그 만남을 실감나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휴먼다큐'로서의 뜨거운 인간애를 느끼게 해줬다.
VR이라고 하면 어딘지 차갑게 느껴지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실감 영상과 짜릿한 감각 체험을 떠올리곤 했던 것이 일종의 선입견이자 편견일 수 있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보여줬다.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느냐에 따라 그저 감각이 아닌 마음에 닿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너를 만났다'는 이처럼 VR이라는 과학기술을 휴먼다큐로 만드는 데 적용하는 역발상을 했다. 그저 신기하게 느껴지고, 자칫 섬뜩한 느낌마저 줄 수 있는 게 VR 기술이다. 인간과 거의 흡사한 존재를 봤을 때 느끼는 불쾌한 감정, 이른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y)'라 부르는 난점이 VR 기술에는 한계로 지목된다. 그래서 차라리 인간 같지 않은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
하지만 '너를 만났다'는 떠나보낸 가족을 다시 만난다는 그 절절한 마음에 공감케 하고 몰입시킴으로써 이 난점을 뛰어넘었다.

◆AI가 복원해낸 가수들의 노래
작년 Mnet에서 방영된 'AI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 번'은 VR 기술로 재연된 그룹 거북이의 리더, 故 터틀맨(임성훈)과 故 김현식이 최신곡을 부르는 놀라운 광경을 담아냈다. '너를 만났다'에서도 또래 아이 5명의 목소리를 학습해 복원해내는 AI 기술이 활용된 바 있지만, '다시 한 번'은 아예 그 음성 복원에 초점을 맞춰 고인이 된 가수를 소환해내는 기적 같은 무대를 보여준 것.
그렇게 터틀맨을 되살려 완전체가 된 거북이가 부르는 무대와, AI 김현식이 부르는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 무대는 너무나 비슷해 유족들과 팬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에도 역시 AI 복원이 갖는 아직은 어색함을 '노래'라는 감성적인 접근과 고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워 넣은 면이 있다. AI나 VR 같은 과학기술이 방송의 소재로 활용되면서 아직은 부족한 그 어색함을 채우는 방식으로서 '휴먼'이나 '음악' 같은 방식이 선택되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SBS가 신년특집으로 마련한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에서도 그 첫 번째 대결은 옥주현과 AI의 노래 대결이었다. '히든싱어'의 형식을 차용한 이 대결에서는, 옥주현과 가수의 노래를 분석해낸 데이터들을 통해 모창을 완벽하게 해내는 AI가 박효신의 '야생화'를 부르고 투표로 누가 더 많은 표를 받는가를 가르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다행스럽게도(?) 45표와 8표로 옥주현이 압도적인 표차로 이겼지만 AI의 음성 모사 기술이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은 첫 대결로 음악을 삼았지만 그 외에도 골프, 주식투자, 심리인식, 몽타주, 작곡 등 6개의 대결 종목을 선택했다. 박세리가 김상중과 함께 골프 AI '엘드릭'과 대결을 벌였고 아깝게 2대1로 패배했다. 이처럼 이 프로그램이 AI를 활용하는 방식은 인간 최고수와의 대결구도를 세우는 것으로 이것은 최근 AI 같은 기술에 대한 찬반양론을 자연스럽게 담아낸다는 장점이 있다. 즉 그 기술의 놀라움을 대결로 보여주면서도 인간의 위치에서 갖게 되는 비판적 입장 또한 녹여내는 방식이다.

◆아직은 어색해서 드는 안도감, 하지만 그런 친숙함의 미래는
AI와 VR은 그것이 모두 음성과 영상 재연에 활용된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아낸다. 마치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흉내낼 때 드는 신기함이 거기에는 존재한다. 하지만 앵무새의 우연적 선택과 달리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학습함으로써 인간과 비슷해지는 그 결과물들은 그것이 향후 우리네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올 거라는 점에서 우려되는 지점이 적지 않다.
즉 완벽하게 사람의 목소리를 재연해내는 AI 기술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오용될 수 있는 위험성도 커지게 된다. 또한 VR 기술까지 더해져 고인까지 복원해낸다면 '생명윤리'에 대한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
AI로 고인의 목소리를 복원해내 새로운 곡을 발표하는 시대가 온다면, 그건 고인의 고유한 예술에 대한 기억과 기록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또한 그건 고인이 원했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점에서 '잊힐 권리'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다. 누구나 고인에 대해 '기억하고픈 욕망'이 존재하지만 그 기억은 실제 삶의 기억이어야 하지 복원되어 만들어진 기억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방송에서 다뤄지는 AI와 VR 기술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너를 만났다'에서 재연한 고인의 모습은 당사자들에게는 절절한 그리움 때문에 리얼하게 다가오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어색한 동작이 주는 이물감을 피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더 진짜처럼 느껴지는 음성 모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음성만이 아닌 VR로 재연된 홀로그램이 더해지면서 여전히 어색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어색함을 지워내기 위해 이들 프로그램들은 '휴먼'이나 '음악' 그리고 '대결' 같은 소재와 방식들을 고민하고 있다.
중요한 건 현재의 AI와 VR 기술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 이들 프로그램이 갖는 단점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거꾸로 이들 기술들은 '어색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안도감을 준다.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이 존재하고 가상이라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복원해내 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과연 이 기술이 점점 완벽해지고 추모를 위한 일회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네 일상 속으로 들어온 상시적인 일이 된다면 어떨까. 그때가 되면 이 친숙함은 어떤 두려움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문득 돌이켜보면 '그때'가 이미 도래해 있는지도 모른다. AI는 어느새 우리가 들고 다니는 휴대폰 속에도 존재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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