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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소설가의 도구

리우 영상설치작가
리우 영상설치작가

글을 쓰는 작가들은 별다른 도구가 필요하지 않아서 종이와 연필, 누구나 사용하는 컴퓨터 키보드, 그런 평범한 도구만 있으면 그만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몸 하나 만으로도 창작을 할 수 있다. 작가의 기원이라 할 옛 음유시인들은 자신의 목소리 하나로 서사시를 읊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암송에 의해 그들의 문학은 구전되었다. 몸으로 출판하고 기억으로 읽은 셈이다.

작가의 몸에 고인 상상이 일상의 미디어를 통해 구체화되는 것이 소설이다. 언젠가 TV에 출연한 한 소설가는, 글 쓰는 사람들의 도구가 하나도 신비롭지 않은 것이 불만이라고 했다.

연주자는 일반인들이 흔히 볼 수 없는 고색창연한 악기를 꺼내며 아우라를 내뿜는다. 늙은 목수가 손때 묻은 연장을 펼쳐 놓을 때 알지 못할 기운이 그의 몸을 감싼다. 하다못해 의사들의 흰 가운과 목에 걸친 청진기 하나도 그의 전문적인 직업을 드러내는 훌륭한 소품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소설가의 연필은 누구나 사용하는 흔하디흔한 일상 속의 오브제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의 재능과 놀라운 상상력을 어필해 줄 수 있는 소품이 그에게는 없다.

아, 생각해 보니 하나 있긴 하다. 타자기. 담배를 비스듬히 꼬나물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타닥 탁탁 드르륵, 탁 탁 타닥 드르륵… 하지만 타자기는 기자들도 썼고, 비서들도 사용했다. 요즘은 타자기의 변형인 컴퓨터 자판을 누구나 두들겨 댄다. 무엇보다 이제 타자기는 골동품이자 수집대상이 되어버렸다.

화가 중에는 소설가처럼 볼펜 한 자루, 연필 한 자루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다. 현대미술에서는 뒤샹의 변기처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오브제가 작품이 되기도 한다. 미디어 아트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C언어 프로그램까지 작업에 동원한다. 미디어의 사전적 의미는 사실 '정보를 전송하는 매체, 중간에 자리하여 사이를 매개하는 것' 이다. 그러니 예술가의 도구도 미디어라 할 수 있고, '인간 사회에서 자신의 의사나 감정 또는 객관적 정보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수단'인 미디어를 물감 하나에 묶어둘 필요는 없다.

무릇 화가라면 테레핀과 린시드오일 향을 맡으며 이젤에 캔버스를 세우고 붓과 나이프로 칠하고 긁어가며 가늘게 눈을 뜨고 바라봐야 할진대, 이제 그런 시대는 갔다.

여기에서 도구의 역설이 시작된다. 달인의 카리스마는 특별한 도구에서 오지 않는다. 어떤 도구든 그의 손에서 특별함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포정(庖丁)의 칼! 뛰어난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성배는 평범한 나무잔이다.

소설가의 보석 같은 단어들은 그의 몸속에서 영근다. 그의 영감이 흔한 도구로 쓰여 손톱만한 USB 하나에 다 들어간다 해도 그의 작품이 하찮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찮은 도구가 그의 뛰어남을 반증해준다. 작품 값을 도구나 재료비로 측정한다면 소설가의 작품은 볼펜 한 자루 값이다. 훌륭한 도구가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탁월한 결과를 내기 위해 반드시 특별한 도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리우 영상설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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