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2년 7월과 8월 장상 씨와 장대환 씨의 국무총리 인준 파동을 겪었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두 사람 모두 인준을 거부했다. 도덕성과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결국 임명을 포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임명했다. 박 장관 임명은 문 정권 들어 여야 합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이루어진 27번째 인사였다. 이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합친 것보다 많은 '야당 패싱' 인사였다.
변 장관은 어떤 능력을 가졌는가와 상관없이 문제를 드러냈다. 이른바 서울 지하철 '김 군'의 죽음에 동정과 연민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김 군이 부주의했다고 나무랐다.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한 사고였는데.
박 장관도 온갖 의혹에 휩싸였다.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선거법 위반, 폭행 사건, 사기 업체 연루 의혹 등 법무부 장관을 맡기에는 하자가 너무 많아 보인 게 사실이다.
두 장관의 임명은 국민의 여론과 생각 따위는 문 대통령의 의사 결정에 아무런 고려 요인도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문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고집불통의 모습은 어디에서 연유할까. 문 정부에서 장관과 각 부처가 주도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시스템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국민 생활과 밀접한 정책들은 청와대의 입김이 절대적이다.
과거 김대중·김영삼 정부 시절에 볼 수 있었던 책임장관제의 모습은 사라졌다. 국무위원 제도라는 것도 이름만 있을 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가장 많이 비판했던 문 대통령이 장관 인사에서 보듯 역대 어떤 정권보다 더 제왕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쪽 진영 국민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민심 이반을 각오하면서까지 고집불통 인사를 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서 밀리면 곧바로 레임덕, 권력 누수 현상이 온다는 위기감이 초래한 터널 현상이다. 이 위기감은 두려움의 발로이다.
두려움이 밀려오면 의식의 터널 현상이 발생한다. 이때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밀리지 말아야, 살아야' 한다는 욕망이 의식을 지배한다. 이것 말고는 다른 무엇으로 문 대통령의 인사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국가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이 터널 현상에 빠져 있으면 그 어떠한 합리적인 판단도 기대하기 어렵다. 앞으로 국정 운영은 더 혼돈에 빠질 것이다.
문 대통령의 불행은 자신의 터널 현상을 완화시켜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주변에 여론과 국민 정서에 합치되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도록 조언해 주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청와대 비서진이나 장관들은 대통령 심기 살피기에만 바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기준 부총리 사퇴 파문이 일었던 2005년 1월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중요한 결정을 다 내가 했는데 참모들의 책임을 묻기가 참 난감하다. 그러나 민심이라는 게 있다.…민심을 거슬러 갈 수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래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당했다.
오만과 고집불통 인사를 하는 문 대통령에게 이런 자세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자격 미달이나 하자가 많은 특정인을 내정해 놓고 이를 합리화하려는 자의성 때문이다.
인사는 만사(萬事)이다. 민간 조직이건, 정부건 일과 운영의 근본이다. 그러나 잘못하면 인사는 망사(亡事)가 된다. 국가를 망치는 망사가 된다면 국민에 대한 배신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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